김홍철 한국기술금융협회 IT 전문위원

 

근대 역사부터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 것 같다. 1910년 8월 일본제국주의의 강압적인 ‘한일합방조약’으로 대한제국은 몰락하고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916년은 한반도에 대한 일제의 수탈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우리나라로서는 너무도 암울한 시기였다. 전 세계적으로는 약 2년 전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간 전쟁으로 시작된 1차 세계대전이 최정점에 올라와 전 유럽이 전쟁터가 됐던 시기였는데, 식민지하의 어둡고 불행한 100여년 전의 바로 이 해에 우리나라에서는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이중섭이 탄생했고, 지구 반대편인 미국 미시간주에서는 ‘디지털통신의 아버지’라 칭해지고 있는 클로드 샤논(Claude E Shannon; 1916~2001)이 태어났다. 식민지와 전쟁에 휩싸인–미국도 1915년 독일 유보트의 민간여객선 공격을 이유로 세계대전에 참여했다– 지구촌 양쪽 편에서 당대의 예술가와 위대한 과학자가 태어난 것이다.

잡음과 채널용량의 한계치를 규정한 샤논의 정리(Shannon’s Theorem)로 유명한 클로드 샤논은 IT(정보통신) 분야 전공자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위대한 인물이지만, 대다수의 일반대중들에게는 전혀 생소한 낯선 이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샤논은 정보통신 분야 학문에서 기초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에 버금가는, 아니 오히려 더욱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업적을 남겼는데, 이 중 특히 주목할 것이 ‘통신의 수학적 이론’이며, 본 이론은 현대 디지털통신 탄생의 토대를 제공하는 혁명적인 발상이 됐던 것이다.

전기와 기계장치에 관심이 많았던,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을 우상으로 존경했던 소년 샤논은, 미시간대학에서 전기공학과 수학을 복수로 전공했으며, 이후 MIT에서 석사논문으로 제출한 ‘계전기와 스위치로 이루어진 회로의 기호학적 분석’이라는 연구논문을 통해 디지털컴퓨터 개발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본 이론은 누르는 숫자를 따라 기계가 동작하는 1930년대 당시 전화교환기에 사용되던 계전기와 스위치를 부울 논리(Boolean logic)를 기반으로 한 논리적 연산에 따라 동작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부울 논리란 ‘참’과 ‘거짓’을 각각 ‘0’과 ‘1’로 표현하여 입력에 따라 변수가 변하는 논리함수이며, 입력값에 따라 논리연산을 수행하여 출력값을 얻는 것인데, 샤논은 이 같은 부울대수를 이용하여 회로를 생성하고 회로에 따라 계전기가 동작하는 교환방식을 제안한 것이다. 전화이용자가 누르는 숫자에 따라 0에서 9까지의 숫자를 찾아가는 당시의 계전기 동작으로는 속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샤논은 부울대수의 원리에 기반하여, 단지 0과 1의 조합으로 모든 숫자를 만들고, 스위치의 on/off만으로 숫자 0과 1을 표현함으로써, 계전기가 0부터 9까지의 숫자를 찾는 것보다 속도를 4배 이상 빠르게 할 수 있었다.

모든 계산, 연결을 2진수로 표현이 가능하다 보니 이제부터는 본 2진수의 표현, 즉 장치의 on/off만 빠르게 할 수 있는 기계적 장치만 개발된다면 획기적인 공정의 절감, 연구개발 기간 단축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겠다는 전망과 더불어, 전자적으로 빠른 스위칭 처리가 가능하게 만든 진공관과 트랜지스터의 개발이 1940년대와 50년대를 거쳐 활발하게 진행되고 개발됐다.

샤논의 업적은 이에 머물지 않았다. 샤논은 선배 과학자인 나이퀴스트와 공동 협력으로 샤논-나이퀴스트 표본화 이론(Sampling theory)을 발표했는데 이는 보내고자 하는 신호의 주파수에 2배 이상이 되는 표본화 주파수를 사용하면 신호의 손상이 거의 없이 수신처로 보낼 수 있다는 이론이었으며, 바로 이 이론이 디지털통신의 효시가 됐던 것이다. 높은 주파수로 낮은 주파수를 덮어씌워 두 개의 주파수 간 마주하는 지점을 숫자로 표현하고 이들 숫자의 크기만큼을 2진수로 바꾸고, 바꾼 2진수의 열을 단지 스위치의 on과 off만으로 표현할 수 있으니, 통신용량의 증가는 물론 잡음(노이즈 noise)이 상당 부분 개선된 원거리 통신도 가능해졌으므로 커뮤니케이션의 급속한 개선과 정확한 의사소통, 물류 개선 등 보이지 않는 산업 발전에 지대한 공로를 끼친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기억하고 추앙하는 위대한 과학자는 아니지만, 샤논은 현대의 고도화된 디지털 세상과 컴퓨터 산업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한,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수학자이자 과학자이다. 우리가 미처 잊고 있었던 위대한 분이 탄생한 4월 마지막 주를 추모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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