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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일색’ 한경직 목사 기념행사가 불편했던 이유
강수경 기자  |  ksk@newscj.com
2017.04.21 18:5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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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영락교회50주년기념관에서 한경직 목사 기념주간 행사가 진행된 가운데 행사장 외부에 한경직 목사를 기념하는 대형 전시판이 세워져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한기총 창립으로 연합에 기여”… 사실은 개신교 양분 계기
“자유민주한국 지키려 헌신”… ‘학살자’ 서북청년회 정신적 지주
“예수님과 흡사한 섬김의 본돼”… 일제 천황신에게 신사참배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한국교회에 한경직 목사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 있을까.

4월 한경직 목사 기념주간을 맞아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는 21일 영락교회50주년기념관에서 다른 해와 다름없이 고(故) 한경직 목사의 업적을 추앙하며 기념예식을 갖고, 한경직목사기념상을 시상했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맞물려 해외 신학자를 초청해 기념 심포지엄을 진행하는 등 행사가 더 확대됐다. 고인을 기념하는 자리였고, 참석자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고 한경직 목사를 높이 평가했다. 심포지엄에서도 칭찬일색이었다.
 

   
▲ 21일 영락교회50주년기념관에서 한경직 목사 기념주간 행사가 진행된 가운데 고(故) 한경직 목사를 기념하는 심포지엄이 진행되고 있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관련 발제도 진행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한경직 목사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창립준비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등 한국교회 일치를 위해 크게 공헌했다. 또한 북한의 공산당 독재와 유물론적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민주적 한국을 지키기 위해 일생 동안 헌신했다. … 중략 … 여러 가지 점에서 한경직 목사는 칼빈과 언더우드의 정신과 활동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연세대 이양호 명예교수).’

‘한경직 목사는 한국교회사에 길이 남을 목회자의 탁월한 모본임이 틀림없다. 세계적인 지도자로서 그의 목회사역과 교회 관계 속에서 건강한 연합 정신을 배울 수 있다. 한경직 목사로부터 이 세상에 인간을 섬기로 오신 예수님과 흡사한 섬김의 본을 발견할 수 있다(글로벌리더십개발원 원장 임경철 박사).’

‘한경직 목사는 신자들에게 공산주의의 문제가 무엇이며, 대한민국의 이념인 민주주의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를 올바르게 설명해줌으로서 새로 태어나는 대한민국이 나가야 할 이념을 제공해줬다. 한경직 목사와 영락교회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위해서 싸웠을 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이념을 확립하는 데에도 지대한 기여를 했다. 여기에 한경직 목사와 영락교회가 대한민국 역사에 기여한 공헌이 있다(서울신학대학교 교수 박명수 박사).’

신학자들은 한경직 목사가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대한민국에 자유민주주의를 확립하는 데 헌신했고, 목회자로서의 본이 됐다고 평가했다. 주최 측은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을 한경직 목사가 수상한 이력을 내세웠다.
 

   
▲ 21일 영락교회50주년기념관에서 한경직 목사 기념주간 행사가 진행된 가운데 플레카드에 고(故) 한경직 목사가 생전에 강조했던 가치관인 ‘예수사랑·나라사랑·이웃사랑’이 명시돼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러나 이들의 고공행진으로 이어지는 칭찬 세례가 불편하다.

한경직 목사가 창립위원장을 맡았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사실 한국교회를 하나 되게 한 게 아니라 둘이 되게 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한기총이 설립되기 전까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구는 NCCK로 하나였다. 1924년 설립된 NCCK는 감리교와 진보 성향의 장로교를 주축으로 독재 정권에 항거하며 삼선 개헌에 반대하고 유신정권에 항의하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한기총은 이러한 NCCK를 견제하고 보수 정치권에 힘을 보태고자 탄생한 배경을 갖고 있다.

또 한경직 목사를 예수에 빗대고 있지만, 그는 하나님 외 다른 신을 섬기지 않아 죽임까지 당한 예수와는 너무도 다른 행보를 보였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일제 천황신에게 경배하는 신사참배를 했다고 한 목사 스스로 고백했다. 또 정치적 활동에도 두각을 보였다.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하기 전인 1945년 기독교사회민주당을 조직했던 장본인이며 군사독재정권 시기에는 국가조찬기도회의 중심인물이기도 했다.

한경직 목사와 영락교회가 대한민국의 건국을 위해서 싸웠다는 발언은 어찌 봐야 할까. 한 목사가 미군정 시절 민간인 학살의 선봉장이었던 ‘서북청년회(서청)’의 회원이었던 영락교회 청년들의 영적 지도자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 목사는 단행본 ‘한경직 목사’에서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되어 조직을 했어요.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미움도 많이 사게 됐지요”라고 말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서북청년회는 제주 4.3사태(1947~1954년) 등 잔인한 테러와 방화, 강도, 강간, 절도 등 학살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월남자들로 구성된 극우단체였기 때문이다. 제주 4.3사태 사건희생자는 신고 접수된 결과만도 1만 4028명이나 되며 대부분 공산당 빨갱이로 몰린 민간인이었다. 서북청년회 등 우익단체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화와 태극기를 들고 다니며 강매하고 이에 불응하면 공산당 빨갱이로 누명을 씌워 고문·폭행 살인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서북청년회의 실체는 사태 후 46년이 지난 2000년 진상을 조사하며 드러났다.

한 목사는 이러한 서북청년회가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이 돼 조직됐다고 언급했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물론 한 목사가 봉사와 후원 등을 통해 한국교회와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친 일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부분만을 추켜세우기엔 그의 흑역사가 갖는 의미는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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