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걸린 미루나무

이외수(1946~  )

 

온 세상 푸르던 젊은 날에는 
가난에 사랑도 박탈당하고
역마살로 한세상 떠돌았지요.
걸음마다 그리운 이름들
떠올라서
하늘을 쳐다보면 눈시울이 젖었지요.
생각하면 부질없이
나이만 먹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알 수 있지요.
그리운 이름들은 모두
구름 걸린 언덕에서
키 큰 미루나무로 살아갑니다.
바람이 불면 들리시나요.
그대 이름 나지막히 부르는 소리. 

 

[시평] 

젊은 시절, 푸르디푸르렀던 젊은 시절,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가난하였고, 그래서 사랑도 박탈당해야만 했고, 그래서 아픈 가슴 부여안고 세상을 떠돌아야만 했던, 젊은 우리의 시절. 그것은 어쩌면 우리 젊음의, 어쩔 수 없는 운명 같은 역마살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이 들어 지난날을 회상해보면, 떠돌던 그 시절이 더 없는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떠돌던 그 시절 만났던 그 얼굴들, 그리운 모습으로 떠오른다.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아니 지금은 도저히 되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그리움, 그래서 더욱 그리운 이름들. 

그 이름들은 저 멀리 구름 걸린 언덕, 그 위에 덩그마니 서 있는 키 큰 미루나무와 같이 우리들에게는 머나먼 그리움으로 그렇게 서 있구나. 바람이 불면, 마치 나부끼는 미루나무 잎사귀 마냥 온몸을 뒤채이며 다가오는 그대, 젊음의 그 그리운 이름들. 그 이름 나직이 불러보지만, 우리의 지난 그 시절의 그 사이 너무나 넓어, 다만 아득히 비껴만 가는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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