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웰컴 투 동막골’ 등장인물들을 그려 놓은 벽화. ⓒ천지일보(뉴스천지)

강원도에서 찾는 전쟁 그리고 평화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한반도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철책. 휴전 또는 정전 시 대치하고 있는 양군의 태세를 고정화시키거나 전선에서 병력을 분리시키기 위해 설정하는 기준선. 바로 휴전선이다. 군사분계선(MDL: military demarcation line)으로도 불리는 이 철조망은 총 길이 약 250㎞로 서쪽으로 예성강과 한강 어귀의 교동도(喬棟島)에서부터 개성 남방의 판문점을 지나 중부의 철원·금화를 거쳐 동해안 고성의 명호리까지 이른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모두가 잠든 고요한 시간. 휴일 새벽의 평화로움은 38선 곳곳에서 터지는 우레와 같은 포성과 동시에 산산이 부서졌다. 우리 민족의 뼈아픈 역사, 동족상잔의 비극 ‘6.25’는 그렇게 북한의 불법 남침에서 시작됐다. 장장 3년 1개월을 끌어온 비극. 이 전쟁으로 약 150만명의 사망자와 약 60만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국토와 국가시설의 대부분이 초토화됐다.

1955년 절대빈곤에 허덕이며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을 돕기 위해 파견된 유엔한국재건위원회(UNKRA) 인도 대표 벤가릴 메논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겠는가?”라는 말로 당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설명했다. 더글라스 맥아더 역시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이 나라는 100년이 지나도 복구되지 못할 것”이라고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묘사했다.

모두가 희망이 없다고 말한 그때,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오로지 국토재건을 위해 달려왔다. 그 결과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계경제순위 11위(2016년, GDP기준)를 기록할 정도로 급성장하며 세계 속에 그 위상을 떨치고 있다. 허나 아직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가 있으니 다름 아닌 분단된 조국의 통일이다.

▲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연합군 비행기가 불시착했던 곳. 촬영 당시의 비행기 모형이 그대로 남아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가깝고도 먼 곳
비무장지대(DMZ)를 포함한 군사분계선에서 남방한계선이 있는 민간인 통제구역(민통선)을 ‘접경지역’이라고 말한다. 민통선은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을 경계로 남쪽 5~20㎞에 있는 민간인 통제구역을 말하며, 남방한계선은 군사분계선(휴전선)에서 남쪽으로 2㎞ 떨어져 동서로 그려진 선을 말한다. 북쪽으로는 또한 북방한계선이 있는데 이 또한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2㎞ 떨어져 동서로 그은 선이다. 이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의 4㎞가 비무장지대다. 이 남북방한계선과 군사분계선 사이에 전초(前哨)로 부르는 GP가 있고, GP와 GP 사이에 다시 추진철책을 만들어 남과 북이 서로의 군사 활동을 감시하고 있다. 동부전선 최북단인 고성에는 북한군 초소와 우리군의 초소가 가장 가까운 곳이 불과 57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도 있다. 조금만 크게 소리 내어 부르면 서로의 목소리에 화답할 수 있는 지척이다.

통일전망대가 위치한 고성은 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북한에 속했다가 6.25전쟁으로 휴전선이 위로 올라가면서 남한에 속하게 된 곳이다. 휴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가 비무장지대가 되면서 고성 주민의 상당수가 실향민이 됐다. 참혹한 전쟁이 주는 아이러니인가. 전쟁과 휴전으로 인해 이들은 자유를 얻었지만 고향을 잃고,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 그 아픈 기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고향을 눈앞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현실. 이는 실향민 모두의 한결같은 아픔이요, 나아가 우리 민족의 상처다. 그 가운데서도 남과 북이 반으로 뚝 잘라 지배하고 있는 강원도는 분단의 슬픔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국군과 북한군이 서로에게 총을 들고 대치하던 중 식량창고에서 터진 수류탄으로 옥수수가 팝콘이 되어 흩날리는 장면. ⓒ천지일보(뉴스천지)

웰컴 투 동막골
2008년 개봉돼 화제를 모았던 영화 ‘웰컴 투 동막골(감독 박광현)’은 6.25전쟁 당시 전쟁의 포화가 채 미치지 못했던 강원도 두메산골 ‘동막골’에서 만나게 된 국군, 인민군, 연합군과의 갈등과 화해를 그려 많은 호평을 받았다. 이념도 상처도 없는 곳, 치열했던 전쟁 대신 인간의 순수하고 따뜻한 인정을 느낄 수 있던 곳. 그래서 ‘동막골’은 전쟁이 없는, 아니 전쟁마저도 피해가는 곳의 대명사처럼 굳어졌는지도 모른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 살짝 흐린 날씨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동막골’이 보고 싶어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동막골 지도에도 없는 마을’이라는 표지판이 “여기가 동막골이에요~ 웰컴 투 동막골~”하고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이하는 것만 같았다. 표지판 옆쪽으로 작은 동굴이 있는데 이름 하여 ‘바람골’이다. 옛날 탄을 캐던 자리라고 한다. 아무래도 좀 위험했던지 옆에 주의사항이 적인 그림판이 하나 떡하니 서 있다. 그림 속 광부의 한 마디 당부. “너무 가까이 가면 돌멩이 맞는 수가 있어유. 돌멩이 맞아 대가리 터지면 누가 책임질거래유….”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충청도 사투리를 듣는 기분이랄까. 표지판 앞길로 난 길을 따라 150m 정도 걸어 올라가면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촬영지가 나온다. 저녁 어스름이 내려올 무렵이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드디어 세트장에 도착, 주위를 둘러보니 10여 년 전 영화에서 봤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영화 속 명장면 하나를 꼽자면, 개인적으로 “펑~”하고 옥수수 알갱이들이 터져 팝콘이 눈처럼 흩날리던 장면을 꼽고 싶다. 동막골에서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 국군과 북한군.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지만, 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마을사람들은 그들의 모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상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영화 속 여주인공인 여일(강혜정)은 자신이 신고 있던 버선을 벗어 비에 젖은 북한 장교 리수화(정재영)와 그 일행의 얼굴을 닦아준다.

서로에게 적일 수밖에 없는 운명. 서로를 믿지 못해 쉽게 총을 내려놓지 못하는 그 긴장된 순간조차 평화롭게 만드는 장면. 바로 그 순간, 여일이 북한군이 들고 있던 수류탄의 고리를 빼내고, 이에 화들짝 놀라 허둥대는 통에 수류탄은 그만 바닥에 “떼구르르~” 굴러 떨어지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북한군 표현철(신하균)이 수류탄을 배로 눌러 막았지만 불발. 이에 별 생각 없이 “휙~”하고 뒤로 던졌는데 하필, 식량창고에 “툭~”하고 떨어진 것이다. 불발인 줄 알았던 수류탄은 식량창고에서 제 소임을 다하며 “펑~”하고 터졌고, 그와 동시에 옥수수 알갱이들이 벚꽃처럼 뽀얀 속살을 드러내며 팝콘이 되어 쏟아졌다. 이 장면에서 감독은 슬로우 모션을 택했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을 어떻게 ‘팝콘’ 하나로 저리도 평화롭게 표현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영화를 봤던 이들이라면 이 장면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사랑이 피어나듯, 평화의 열망 또한 전쟁 속에서 피어나기 때문이다. 영화는 말한다. 이념도 사상도 욕심도 버리고 마음으로 하나 될 때, 인류의 염원인 평화는 따스한 봄날 흩날리는 벚꽃처럼,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라일락 꽃향기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 앞에 다가올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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