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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포커스] “민주화 위해 희생한 선배들 있었다는 자부심 가졌으면”
유영선 기자  |  sun@newscj.com
2017.04.19 09: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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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구(77) 4.19민주혁명회 사무총장이 지난 14일 4.19혁명 57주년을 앞두고 4.19혁명 기념도서관에서 본지와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박종구 4.19민주혁명회 사무총장 인터뷰

4.19혁명, 만연된 봉건사회 타파하려는 국민 염원 담겨
‘4.19혁명의 정신’ 이어받아 5.18민주화운동 전개된 것
세계적인 혁명 ‘바스티유 프랑스 시민혁명’과 4.19 비슷

미국 독립혁명 등과 함께 ‘세계4대민주화혁명’으로 추진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우리나라도 바스티유 프랑스 시민혁명같이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한 선배들이 있었다는 자부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박종구(77) 4.19민주혁명회 사무총장은 지난 14일 4.19혁명 57주년을 앞두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20~40대에게 이 같은 당부의 말을 전했다.

박종구 사무총장은 “4.19혁명이 없었으면 이 나라의 민주화는 안 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5대 4.19민주혁명회 회장을 역임한 그는 현재 이 단체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회원은 유족까지 포함해 500여명이다. 1960년 4.19혁명 때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 사무총장은 반세기가 지났지만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당시 경무대(現 청와대)에서 경찰의 총격으로 우측 복숭아뼈 관통상을 입었다. 박 사무총장은 “당시 경찰은 다리 쪽으로 총을 쐈다. 다리에 총 맞은 사람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경찰봉에 맞아서 머리를 다친 사람, 경찰서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한 사람 등이 수다했다. 4.19혁명 때 사망자는 180명, 부상자는 6500여명에 달했다.

4.19혁명은 비무장 학생과 시민이 궐기하여 부정부패와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화의 초석을 다진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큰 의미를 남긴 사건이다.

박 사무총장은 “4.19혁명은 이 나라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 일어났다기보다는 각계각층의 만연된 봉건사회를 타파하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당시 상의하달만 있고 하의상달이 없었다”며 “모든 것이 지시에 의해 움직였고, 결국 그게 분출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2.28민주화운동, 3.15 부정선거 등이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긴 했지만, 당시 형성된 봉건사회를 타파하려는 국민의 염원이 4.19혁명으로 이어졌다는 게 박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그는 “세계 최고의 혁명을 꼽자면 바스티유 프랑스 시민혁명”이라며 “4.19혁명과 거의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민의로 왕정을 무너뜨린 프랑스 시민혁명과 같이 4.19혁명도 학생과 시민이 부정부패와 독재 권력과 맞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사무총장은 ‘5.18민주화운동’에 비해 4.19혁명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는 데 대해 아쉬움이 크다. 그는 “역사적으로 보면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은 하늘과 땅”이라며 “5.18은 혁명이라고 부르지 않고 민주화운동이라고 하지만 4.19는 혁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4.19혁명은 약 1년 만인 1961년 일어난 5.16 군사 정변으로 인해 경시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 18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9년 등 군사정권이 27년간 이어지면서 4.19혁명은 국민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간헐적으로 기념행사를 하는 것에 그쳤다.

그는 “자라나는 후배들이 4.19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5.18민주화운동도 전개된 것”이라며 “군부 쿠데타 세력에 대해 젊은이들이 끝까지 저항했고, 그래서 우리나라가 민주화를 이뤄낸 것”이라고 말했다.

5.18기념재단과 달리 4.19혁명은 재단이 없다. 박 사무총장은 “민주화의 근간이 된 4.19혁명을 계승하기 위해서 정부가 일정액을 출연하고 뜻이 있는 복지가, 성공한 기업인 등이 기부금을 내면 지금이라도 재단설립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5.18기념재단의 경우 상당한 기금이 조성돼 많은 기념사업을 할 수 있지만 그에 비해 4.19혁명 단체들은 재정적으로 열악한 상태다.

박 사무총장은 “5.18기념행사 때는 전라도 소속 국회의원 30여명은 물론 전국 국회의원들이 찾지만 4.19혁명 기념행사 때는 별로 오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4.19혁명 때 학생이었던 사람들이 현재 80세 이상의 고령이 됐기 때문에 표를 보고 움직이는 국회의원들이 찾아올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다.

현재 국립4.19묘지, 4.19혁명기념도서관, 부산 용두산공원 4.19기념탑 등에서 4.19혁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에 국립4.19묘지를 확장하고, 4.19도서관을 현대식 도서관으로 재건립을 추진, 2000년 현재의 4.19혁명기념도서관을 개관했다.

박 사무총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은 4.19혁명 때 현장에 있었다”며 “당시 김 전 대통령의 나이는 30대 초반으로 기성세대가 하지 못한 것을 당시 학생들이 앞장서 이뤄낸 것을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

올해도 국립4.19민주묘지가 자리한 강북구에서 ‘4.19혁명 국민문화제’가 지난 13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됐다. 13일 4.19혁명 의미 재조명 국제학술회의를 시작으로 15일 ‘전국학생 그림그리기 & 글짓기대회’, 16일 전국대학생 토론대회, 18일 ‘4.19기념제’ 등 다채로운 행사를 펼쳤다. 19일에는 국립4·19민주묘지에서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정부 공식 기념행사인 ‘제57주년 4.19혁명 기념식’이 열린다.

특히 4.19민주혁명회를 비롯한 4.19혁명 관련 단체들은 이번 국민문화제를 통해 4.19혁명을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 시민혁명, 영국의 명예혁명 등과 함께 세계4대민주화 혁명으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4.19혁명 국민문화제’는 서울시 3억, 국가보훈처에서 2억 5000만원을 지원받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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