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일본 대기업 도시바(東芝)가 해체 일보 직전으로 추락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이대로 가면 도시바의 상장이 폐지될 수 있다”고 한다. 실제 부정회계 의혹을 받고 있는 도시바(東芝)는 지난 4월 11일 감사법인의 ‘적정의견’ 없이 지난해 12월 말까지 9개월간 5763억엔(약 5조 9223억원)의 영업 손실을 냈다고 공시했다. 도시바의 감사법인이 거액의 손실규모 등에 대한 이견으로 감사보고서에 적정 의견 부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도시바의 지난 회계연도에 기록한 적자 규모는 1조엔(약 10조원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시바는 14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전기·전자업체로서 연매출액 56조원에, 종업원 수만 18만명이 넘는 글로벌 대기업이다. 냉장고와 세탁기(1930년), 자동전기밥솥(1955년), 컬러TV(1960년) 등 숱한 일본 최초의 제품을 내놓았다. 1985년엔 세계 최초로 노트북을 만들어 90년대 세계시장을 석권했고 1987년에는 세계 최초로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개발·상용화했다.

일본 경제의 호황기를 뒷받침했던 일본의 자존심 도시바는 2000년대 초반 외부 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디지털 후발 주자로 밀려났다. 2015년 7월에 1562억엔(1조 6000억원)의 이익을 부풀린 분식회계 사건은 치명적이었다. 2006년 56억 달러에 매입하고 빛 보증만 8조원에 이른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가 애물단지로 전락하면서 결정타를 맞았다. 지난 2년여 동안 도시바는 생존을 위해 많은 사업을 매각했다. 지난해 3월에는 의료기기와 백색가전 사업 일부도 매각했다. 반도체영상센서, 의료처럼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큰 사업은 일본 기업들에게 매각하고 백색가전이나 TV처럼 경쟁력을 잃었다고 판단되는 사업은 중국 등 해외 기업에 팔고 있다. 알짜배기 사업인 낸드플래시도 매각하기로 했으나 성공하더라도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일본 언론들은 도시바의 몰락은 혁신과 도전보다 단기 실적에 급급했다고 지적한다. 회계부정과 원전사업 실패도 컸지만 산업구조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 원인으로 분석했다. 파벌주의와 관료주의 문화는 상명하복의 엄격한 군대 문화와 무조건 복종으로 이어졌고 변화에 유연대응을 못하는 경직성 등이 몰락의 원인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정부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원전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뛰어든 정경유착도 문제였다. 인수 당시 도시바 경영진은 아베 신조 총리가 만든 자문기관의 좌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GE 등 경쟁사와는 달리 웨스팅하우스 인수를 거부하지 못했다.

1870년대 도시바와 함께 백열전구로 사업을 시작해 140여년이 된 GE는 위기를 변화와 혁신으로 극복했다. GE도 도시바와 똑같이 가전사업을 매각하고 이제 백열전구를 만들지 않는 등 유사한 길을 걸어왔다. 1980~90년대 소니·파나소닉·산요 등 일본 전자회사들의 위협에 시달린 GE도 마찬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극복하려고 진출했던 금융사업은 한 때 그룹 전체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했으나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막대한 부실에 시달렸다. 자본잠식에 신용등급은 강등됐고, 정부 보증 없이는 회사채를 발행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GE는 금융·가전 등 불필요한 사업을 과감히 정리했고 미래에 집중해 경쟁력을 높였다. 이제 GE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혁신 기업으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산업용 인공지능(AI)과 스마트홈, 빅데이터를 통한 애프터서비스 사업, 디지털 헬스케어 등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우리는 GE의 혁신을 교훈으로 삼고 도시바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우리 기업들도 항상 시대적 흐름에 대응해 변화와 혁신을 해서 경쟁력을 지속 유지해야 한다. 정부는 도시바의 구조조정 과정은 눈여겨봐야 한다. 매출이 약 60조원에 달하는 140년 전통의 간판기업이 일본 경제에 큰 충격 없이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와 달리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적자금 투입을 최소화하고 있고 부처 간 갈등이 표면화된 적은 없다. 잃어버린 20년 불황과 후발 주자의 추격에도 견디고 있는 일본의 저력이 바로 이런 기업 간, 정부 간 협력이 아닌가 싶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거센 도전을 받고 있는 우리도 한 번쯤 되짚어 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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