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진평은 여씨 일족 토벌의 제일 공로자를 주발에게 주려는 문제의 마음을 읽었다. 진평은 미련 없이 우승상의 자리를 주발에게 양보한다.

나라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문제가 어느 날 회의를 열고 주발에게 전국의 연간 재판 건수와 국고에 대해 물었으나 그는 두 가지 모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문제는 다시 진평에게 물었으나 진평은 대답을 회피하며 말했다.

“그 문제는 담당자에게 물어 주십시오.”

“담당자라니 누굴 말하는가?”

“재판에 관해서는 정위가 있으며, 국고에 대해서는 치속 내사가 있사옵니다.”

“그럼 그대는 대체 무엇을 담당하고 있는가?”

“폐하께서는 소신의 어리석음을 모르시고 황공하옵게도 재상에 임명해 주셨습니다. 모름지기 재상의 임무는 위로는 천자를 보좌하고 음양 이기의 조화를 꾀하며 사계절의 순환을 순조롭게 하오며 아래로는 만물을 잘 보살피는 데 있습니다. 또한 바깥으로 사방의 야만족 및 제후를 진무하며 안으로는 백성들을 다스리며 관리들에게 제각기 맡은 일을 잘하도록 하는 데에 있습니다.”

문제는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좋은 말을 했소.”

문제가 좌승상 진평을 칭찬하자 주발은 더욱 부끄러웠다. 회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주발은 진평에게 불평했다.

“평소에 왜 황제에게 대답할 말을 가르쳐 주지 않았는가?”

그러자 진평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자네는 우승상이면서도 그 직책이 무엇인지 몰랐단 말인가? 가령 폐하께서 장안의 도난 건수를 물으셨다 해서 자네는 그것까지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주발은 자신의 능력이 진평에게 미치지 못함을 깨달았다. 얼마 뒤 그는 병을 구실삼아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청원했다.

그 뒤 진평은 승상으로 문제 2년(기원전 187)에 죽었다.

진평에게 헌후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문제가 즉위했을 때 여씨 일족을 없애는 데 제일 공로가 큰 주발에게 최고 벼슬인 우승상에 임명하고 금 5천근과 봉지 1만 호를 하사했다. 그런 뒤 한 달쯤 지난 후 주발에게 정중하게 경고하는 사람이 있었다.

“당신이 여씨 일족을 없애고 신제를 옹립했을 때 이미 권세는 다한 것이오. 게다가 엄청난 포상도 받고 우승상 자리까지 차지하고 문제의 각별한 은총을 받고 있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소. 그대로 우승상 자리에 머물러 있다간 언제 화를 당할지 모르는 일이오.”

주발은 이 경고에 느끼는 것이 있었다. 그리하여 문제에게 우승상의 인수를 반환하겠노라고 청원했다. 그러자 문제는 그의 청을 들어 주었다.

1년 뒤에 승상 진평이 죽자 주발은 다시 그 후임으로 기용됐다. 그러나 10개월쯤이 지나자 이번에는 문제로부터 그만 둘 것을 권고 받았다.

“내가 제후들에게 각기 자신들의 영지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는데도 이것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그대는 네게 소중한 사람이지만 이때에 솔선해서 영지로 돌아감으로써 다른 제후들에게 모범을 보여 줄 수 있겠는가?”

주발은 당장 승상을 사임하고 영지인 강현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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