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천지=송범석 기자] <은교>는 곤혹스럽다. 열입곱 여고생과 69세 노(老)시인의 사랑을 대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인간의 오욕칠정 속에서 피어나는 관능과 순수는 어떤 소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탐스럽다.
책은 사랑, 육욕, 질투와 같은 인간의 애증을 농밀하게 그려낸다. 특히 단순한 금기를 넘어서 늙는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와 시대상을 풍자한 다양한 감상 포인트가 매력적이다.
<촐라체>와 <고산자>로 인간의 한계와 정한을 담았던 작가 박범신 씨는 한 달 만에 봇물 터지듯 이 소설을 써냈다고 고백한다. 작가는 은교를 통해 무한한 갈망의 실체를 파헤치고, 사랑에 매혹된 고고한 영혼의 광기어린 열정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세상의 존경을 받던 노시인, 이적요가 죽은 지 1년이 되는 날. 시인의 유언대로 Q 변호사는 이적요가 남긴 일기 형식의 노트를 공개하기 위해 펼쳐보게 되면서 진실을 알게 된다.
고답적인 생의 대명사로 불렸던 이적요의 삶은 거칠었고, 한편으로는 계산적이기까지 했다. 이적요 스스로도 자신의 삶을 가식으로 뒤덮인 누추한 인생이었다고 고백하며, 오랜 세월 동안 가슴속에 가두어 두었던 영혼의 아픈 굶주림을 속절없이 토해낸다.
시인의 아픔과 성찰은 은교로부터 시작된다. 시인은 열일곱의 눈부신 육체의 은교가 등장하면서 자신이 쌓아 올렸던 모든 가식과 함께 스스로 무너져 내려간다. 그것은 환희이자 동시에 파멸이었다. 시인은 진정으로 은교를 사랑했다. 그녀는 그의 여신이자, 순결한 처녀요, 담을 수 없는 아픔이었다.
그렇게… 이슬을 머금은 꽃 한 송이와 거뭇거뭇한 늙은 버섯은 신기루를 바라보듯 서로를 응시하며, 짙은 보랏빛 심연 속을 방황한다.
소설은 동시에 이적요의 제자인 서지우와 은교의 삼각관계를 조명한다. 이적요가 대신 써준 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서지우는 은교를 사랑하게 되면서 위태위태한 욕망의 변주를 이어간다.
<은교>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이 노시인과 여고생의 사랑이라는 통속적인 소재로 흥미나 끌어보려고 했다면 결코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은 삶과 죽음의 의미, 늙는다는 것의 정의, 가식과 허세에 찌든 문단, 순수와 관능의 차이를 되묻는다.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