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이전투구’라는 사자평설(四字評說)은 함경도인의 기질을 지칭한 것이다. 개국공신 정도전이 태조 앞에서 팔도를 평한 것에서 연유했다는 설이 있다. 사람들의 성정이 각박하여 이익이 있으면 서로 개처럼 물어뜯는 형상에 비유한 것이다.

함경도 땅은 본래 야인(野人, 여진)이 살던 곳으로 고려는 야만이라 하여 비하하던 지역이다. 고려 후기에는 야인 부족장들이 송도를 찾아와 대대로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겨왔기 때문에 받아주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고려왕조는 이들이 난폭하며 예를 지키지 않는다고 하여 배척했다.

우리 역사에서 붕당의 권력쟁탈 과정을 보면 ‘이전투구’ 양상이다. 선비들은 평생 매진했던 도학(道學) 정신마저 팽개쳤다. 정적을 감시하고 작은 잘못이라도 있으면 자당의 논객들을 총동원하여 상소를 올린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마구 거짓말을 만들어 냈다. 아침이면 남을 모함하는 상소 두루마리가 임금의 연상에 무더기로 놓여진다. 상소를 읽은 임금은 판단이 흐려지기 일쑤였으며 충신을 배척하고 심지어는 사약을 내려 죽이기까지 했다.

조선말 이건창(李建昌)이 지은 붕당(朋黨) 정치사서 당의통략(黨議通略)을 보면 면 당쟁으로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나온다. 선조 때 21명, 인조 2명, 효종 7명, 숙종 38명, 경종 38명, 영조 34명으로 모두 140명이다.

이 중 역모 63명, 임금을 속인 자 2명, 반정으로 죽은 자가 9명이었다. 장희빈 사건으로 죽은 자는 모두 13명으로 나오고 있다. 역모로 희생당한 죄인 가운데는 모함을 받고 억울하게 죽은 자도 많았다.

임금이 힘을 잃으면 어전회의에서도 신하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고 막말이 등장했다. 임진전쟁으로 한양을 버린 선조는 의주로 피난을 가면서 근신들과 백성들에게 막말 수모를 당했다. 빗물에 젖은 수라상을 먹는데도 백성들은 손가락질을 서슴지 않았다. 이 판국에도 붕당은 상대를 몰락시키기 위해 모략을 일삼고 힘없는 임금을 겁박하기도 했다.

참담한 선조는 다음과 같은 회한시를 남겼다.
- 관산에 뜬 달을 보며 통곡하노라/ 압록강 바람에 마음 쓰리노라/ 조정 신하들은 이날 이후에도/ 서인, 동인 나뉘어 싸움을 계속할 것인가 -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한 인조도 어전회의에서 차마 보지 않아야 할 대신들의 싸움을 목도해야 했다. 주화파와 주전파가 갈리어 고성을 지르고 욕을 내뱉는 싸움을 벌였던 것이다.

지금 한국의 정치판을 중국 역사인 춘추 전국시대에 비교하는 이들이 많다. 굳이 왜 이 역사를 회고하는 것일까. 패자였던 주(周)나라가 힘을 잃자 천하는 여러 갈래로 찢기어 약육강식의 시대로 접어든다.

이 시기 등장한 일곱 영웅들은 ‘군웅할거’라는 고사를 만들었다. 7웅은 한, 위, 조, 진, 초, 연, 제 등으로 천하는 쟁패시대로 접어든다. 2백년 동안 전쟁의 와중에 빠져 백성들의 고통은 말이 아니었다. 지금 대선판에 나선 대권후보들이 다섯명을 넘어 춘추시대의 혼란상이 떠올림직하다. 안보 불안, 경제 불황, 갈라진 민심, 총체적 난국이 아닌가.

대선을 한 달도 남기지 않고 정치판이 이전투구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상대방을 흠집 내기 위한 막말에다 무슨 허점이라도 발견하면 서로 물어뜯는 형상이다. 적폐청산과 정치혁신을 주장하는 유력 두 후보가 모두 구태, 적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연 이들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갈라진 민심을 아우르고 대한민국을 바로 세울지 의심이 간다.

새 시대에 대한 올바른 정책과 비전을 가지고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후보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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