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매년 3월이면 약속이나 한 듯이 언론사마다 ‘학부모 총회’ 평일 개최 기사를 쏟아낸다.

3월 23일 헤럴드경제는 ‘“왜 하필 평일 낮에”… 눈칫밥에 학부모 총회 못가는 워킹 맘’, 3월 28일 연합뉴스는 ‘학부모 총회 평일에 소집… “직장인은 어떡하라고”’, 3월 30일 서울신문은 ‘“평일 3시 학부모회의 오세요”… 맞벌이 부모는 어떻게 가나요?’라는 식으로 제목도 최대한 자극적으로 뽑아 독자들을 유인한다.

하지만 이런 기사의 베스트 댓글 즉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글은 ‘막상 학부모들은 별로 생각 안 하는데 언론이 난리네. 그냥 전화 상담해도 되고 상담 안 하고 넘어가도 실제로 불이익 없다. 괜히 불안감 조성하는 이런 기사 너무 싫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만 그렇지 크면 오지마라고 한다. 총회 참석해도 안 해도 아무런 차이 없는데 왜 자꾸 이런 기사가 올라오지?’라는 글이다.

교육부는 2011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일선 학교에 ‘저녁시간 등 학부모가 편리한 시간에 연 2회 이상 (총회를) 개최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지만 유명무실하다. 서울시교육청의 자료에 따르면 학부모 총회를 야간이나 주말에 개최하는 경우는 5% 이내이다. 일선 학교들은 “맞벌이 부부나 워킹 맘을 배려하는 게 취지는 좋지만 전업주부에 대한 역차별이 되어 또 다른 부작용을 만든다”며 난색을 표한다. 유독 언론만 워킹 맘과 학교의 갈등을 조장한다.

서울의 D중학교에 근무하는 정희주(45, 여) 교사에게 3월은 잔인한 달이다. 봄 방학 기간인 2월 중순부터 올해 새로 맡게 된 업무를 파악하느라 거의 쉬지를 못했다. 개학을 한 3월부터는 담임을 맡은 학급 아이들의 신상을 파악하느라 매일 서너 명씩 면담을 하고, 일주일에 21시간 수업을 하느라 성대 결절이 올 정도로 목이 아파 집에 가면 한마디도 안하고 묵언수행을 한다. 그중 가장 힘든 일이 3월 중에 열리는 학부모 총회다. 대부분 학교가 오후에 개최하지만 정 교사가 근무하는 학교는 교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년째 ‘저녁 학부모 총회’를 고수하고 있다.

정교사가 부임 첫해 오후 2시에 하던 학부모 총회와 지금처럼 저녁 5시에 하는 학부모 총회의 참여율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저녁 개최를 찬성하는 워킹 맘도 있지만, 전업 주부들은 저녁 개최가 불편하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 아이가 하나가 아닐 경우 5시경 학원가는 아이들의 저녁을 챙겨줄 시간이고 남편이 퇴근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학교가 총회 당일에 공개수업을 하는데 오후에 총회를 할 경우, 공개수업을 참관하고 이어서 학부모 총회에 참석하면 된다. 하지만 저녁에 학부모 총회를 개최할 경우는 공개수업을 참관하고 집에 갔다가 총회를 위해 다시 와야 한다. 그러다보니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공개수업 참관율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오후에 총회를 하나 저녁에 하나 워킹 맘들은 연차나 조퇴를 해야 참석이 가능하다. 몇 명의 워킹 맘이 인권위에 진정했다고 일정을 저녁으로 변경하라는 것은 대다수 전업주부를 도외시하는 권고이다.

온라인상의 학부모들도 “워킹 맘 위주가 아니라 학교 일과 시간이 기준이 되어야죠” “저녁에 하면 집에 남은 아이는 누가 봅니까?” “전업주부도 못 갈 때 있어요. 그렇다고 아이가 기죽진 않아요” “교사들이 무슨 죄가 있나요? 그들도 맞벌이 부부여서 퇴근하고 챙겨야 할 아이들이 있을 텐데”라는 의견이 대세다.

총회시간을 교육부의 탁상행정이 아닌 교사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오후에 실시하는 게 맞다. 학부모 총회가 끝나고 저녁 늦게까지 교무실에 남아 학부모들과 상담을 이어가야 하는 교사들에게 무한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 교사들에게 3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아이를 맡겨놓고 어떻게 한 번도 찾아가지 않느냐’는 생각도 할 필요 없다. 교사들도 학부모들이 덜 찾아오는 것을 진심으로 원한다. 학교에 관련된 일이라면 회사에서 반차 정도는 편하게 내 주는 워킹 맘 배려 문화가 회사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교육 선진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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