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고조가 세상을 떠나자 여 태후는 여씨 일족을 왕으로 앉히기 위해 야심을 불태웠다. 태후는 먼저 우승상 왕릉에게 그 계획을 묻자 결연히 반대했다. 태후는 다시 좌승상 진평에게 묻자 그는 지당한 말씀이라고 찬성했다. 여 태후가 왕릉을 태자 스승으로 좌천시키자 그는 병을 핑계로 조정에는 일체 나가지 않았다.

그 뒤 7년이 지나 왕릉이 세상을 떠났다.

왕릉을 쫓아낸 태후는 우승상에 진평을 임명하고 좌승상에는 벽양후 심이기를 앉혔다. 심이기는 조정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궁중에서 태후의 비위만 맞추고 있었다.

심이기는 패현 사람이었다. 고조가 팽성 싸움에서 패했을 때 태상황(고조의 부)과 여후가 항우에게 잡혔다. 그때 그는 여후를 담당한 집사로서 그녀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 뒤 심이기는 고조를 따라 항우와의 싸움에서 공을 세우고 후로 책봉됐다. 그런 까닭에 여 태후가 심이기에게 베푸는 총애는 각별했다. 고조가 죽은 뒤 심이기는 좌승상이 되어 궁중으로 들어가자 관리들은 어떤 일이건 그의 결재를 받아야 했다.

한편 진평은 평소부터 여 태후의 여동생인 여수의 원한을 사고 있었다. 일찍이 고조가 여수의 남편 번쾌를 사로잡은 일에 진평이 관련됐기 때문이었다. 여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 태후에게 그를 헐뜯었다.

“진평은 승상이면서 정치는 돌보지 않고 매일 여자와 술에 빠져 있습니다.”

이 말이 전해지자 진평은 여수의 말대로 매일같이 그대로 했다. 여 태후는 그 말을 듣고 빙그레 웃었다. 태후는 진평을 불러 여수가 한 말을 물어 본 뒤에 말했다.

“그대는 오직 어떻게 하면 나에게 충성을 할 수 있을까만을 생각하오. 여수의 말 따위에 마음을 쓸 필요가 없소.”

그 뒤부터 여 태후는 여씨 일족을 차례로 왕으로 내세웠다. 그때마다 진평은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여 태후가 죽자 진평은 태위 주발과 힘을 합쳐 여씨 일족을 죽이고 문제를 옹립했다. 진평의 속셈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좌승상 심이기는 여씨 일족이 망하자 벼슬에서 쫓겨났다.

새 황제가 된 문제는 태위인 주발이 나서서 여씨 일족을 없애 버렸으므로 그를 제일의 공로자라고 생각했다. 진평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우승상 자리를 주발에게 양보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는 건강을 핑계로 문제에게 벼슬에서 물러날 것을 주청했다. 그러나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문제로서는 진평의 속을 알 수가 없었다.

“그대가 몸이 아프다는 소문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사임하겠다니 무슨 이유라도 있는가?”

“고조 때에는 제 공이 주발을 뛰어 넘었습니다. 여씨 일족의 토벌에 관해서는 주발에 미치지 못합니다. 우승상을 주발에게 주시옵소서.”

그래서 문제는 주발을 우승상에 임명했고 진평을 좌승상에 앉혔다. 문제는 진평에게 금 1천근을 하사하고 봉직 3천호를 주었다. 그러는 사이 나라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문제가 어느 날 회의에서 우승상 주발에게 물었다.

“재판은 전국에서 연간 몇 건쯤 있는가?”

“저는 잘 알지 못하옵니다.”

주발은 솔직하게 모르는 것을 사과했다.

“그러면 국고는 연간 얼마나 되는가?”

“그것도 모르겠나이다. 죄송하옵니다.”

주발은 또 다시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온몸에 식은땀을 흘렸다.

문제는 좌승상 진평에게 물었다. 그러나 진평은 말을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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