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살률 급증과 일탈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지난해 인성교육 진흥법이 공포됐다. 그러나 실질적인 인성함양은 인성교육법이 아닌 가정 교육과 자아성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지론이다. 이에 본지는 자아성찰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꼽히는 일기 쓰기 확산을 위해 ‘천지일보 인성교육 진흥캠페인 나의일기’ 기획을 진행한다. 일기쓰기 효과와 종류, 작성법과 더불어 꾸준히 일기를 써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본 캠페인에 참여한 독자 일기가 게재될 예정이다.

 

▲ 이용엽씨가 선친 고(故) 이상래 옹이 1916년 남긴 일기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전북 전주시 이용엽씨

故 이상래 옹 100년전 일기 전주민간 기록물 대상 수상
전주시 모습 생생하게 묘사 자전거 ‘하는 나는 새 같았다’
홍수 이야기 등 드마라 보듯 1916년 5월에서 8월까지 기록

[천지일보 전주=이미애 기자] “100년 전 시골 청년이 처음 도시에 와보니 모든 게 신기했나 봅니다. 보이는 대로 솔직하게 하루하루 쓴 일기가 이제 전주시의 소중한 기록유산이 됐습니다.”

흔히 ‘나의 일기가 역사가 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잘 와닿지 않는 얘기다. 그런데 정말 하루 하루 쓴 일반인의 일기가 보물이 됐다. 지난 21일 전주시청에서 만난 이용엽(77)씨의 선친(故) 이상래(1896~1979)옹이 보물이 된 일기의 주인공이다. 이용엽씨는 선친이 쓴 일기를 펼쳐 보이며 “아버지의 손때가 묻고 정신이 깃든 일기장이 개인적인 자산을 넘어 100년 전 전주의 생활상을 알리는 소중한 기록유산이 될 줄은 몰랐다”라고 했다.

선친(이상래) 일기는 이용엽씨가 지난해 12월 전주시가 주최한 ‘민간기록물 수집 공모전’에 제출해 영예의 대상을 수상하면서 전주의 공식 민간 기록유산이 됐다. 이용엽씨는 한국서도협회 전북지회장을 역임하고 전주문화원 동국진체연구소장과 진안 향토문화 예술연구회장(진안고을 발행인)으로 활동하면서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씨는 “선친이 남긴 소중한 ‘유품’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었던 것은 자식 된 도리로 당연한 일”이라며 “개인이 쓴 일기자만 전주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는 미래유산으로 인정하고 귀중한 자료로 채택해 준 전주시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이씨는 “사람은 갔지만 역사는 말없이 흘러왔다”며 “선친 이상래 옹은 일제감점기 체제에서 20대 젊은 청년으로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펼쳐보지 못한 불운의 삶을 산 인생”이라고 회고했다.

이씨에 따르면, 1916년 전북 진안에서 화동학교를 다니다 전주 농고로 진학한 선친 이상래 옹은 시골에서 살다 전주에 올라오니 모든 것이 신기했다. 그래서 시간이 날때마다 전주 곳곳을 구경 다니면서 본 것과 느낀점을 일기에 상세히 기록했다.

“선친은 일기에 스케치 하듯 간략하지만 꼭 필요한 정보를 담았어요, 재밌는 것은 생애 처음 본 자전거를 마치 ‘하늘을 나는 새 같았다’고 표현했습니다.”

이씨는 “당시에 자전거가 귀한 교통수단이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라며 “일기장에 깔끔하게 정리 돼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1916년 5월에서 8월까지 기록된 이상래옹의 일기장에는 100년 전 전주의 환경, 기후, 산업, 문화, 체육 등 사회 전 분야에 대해 기술돼 있다.

특히 지금의 덕진 운동장이 1915년에 조성됐다는 것을 알수 있는 내용 등 1916년 ‘전주구락부’주최 자전거대회‘를 한 기록이 일기에 생생하게 묘사돼있다. 또 덕진 연못 주변에 3만평의 송림이 우거지고 집이 3채가 있었다는 기록과 함께 당시 전북 철도 주식회사에서 1914년 11월에 개통한 경편철도(간이열차)가 전주 시내 한복판을 지나 군산까지 경유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월초파일 무렵의 관등놀이를 보고 그 느낌을 표현한 내용 등 현재의 전주 시민들이 상상할 수 없는 전주 풍경이 한 자 한 자 일기장에 써져 있어 전주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 영창농장에서 종자개량을 해서 농사짓는 농민에게 나눠주었던 이야기 등이 기록된 일기. ⓒ천지일보(뉴스천지)

이와 함께 “당시 제일보통학교 운동회 구경을 한 얘기, 환벽당 옆에 유명한 최병심(독립운동가) 학자가 교육을 할 때 선배는 두건을 쓰고 소학자들은 두건을 쓰지 않았다는 내용을 볼 때 교육과정에서도 엄격한 질서가 있었다는 걸 짐작하게 한다”고 이용엽씨는 말했다.

특히 학문을 수학하던 그곳에 대밭이 많이 있었다는 얘기, 홍수가 난 이야기, 등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기록돼 있어 전주의 100년 전 모습을 재조명해 볼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씨는 “일본군 사령관이 온다 하면 학생들 동원해 맞이하는 내용, 운동회날 일본군 장관(당시 도지사) 아들이 죽었다고 운동회를 연기했다는 내용도 기록돼 있다”고 밝혀 당시 일본의 압제에서 암울했던 교육현장의 실태를 짐작케 했다.

이씨는 “선친 일기의 초안을 잡아 100쪽내외로 원본을 넣고 각주를 달아 오늘날 그 심정으로 재해석해 출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상래 옹의 일기 원본은 한문으로 썼고 일본어로 설명이 돼 있는 것을 다시 국문으로 번역해 한글번역본과 함께 제출해 전주시에 보관돼 있다.

이씨는 “일기쓰는 습관은 인성교육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면서 “일기를 쓰면 그날을 반성하고 정리하게 된다는 점에서 현재보다 더 좋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일기쓰기는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기를 쓰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좋은 품성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는 측면에서 청소년들에게 일기쓰기를 권장하는 건 긍정적인 자극이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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