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인도의 시성(詩聖) 타골은 한국을 ‘아시아의 등불’이라고 노래했다. 한국에 대한 예찬 시는 3.1 비폭력 저항운동이 세계에 감동을 주었던 시기에 쓰였다.

타골은 이 시기 일본 도쿄와 중국 베이징 명문 대학 강단에서 특강을 하면서도 서울에 올 수 없었다. 동아일보 창간호 축시 부탁을 받고 응해 준 것인데 한국을 ‘마음의 조국’으로 까지 가슴에 새겼다.

-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중략)… 그러한 자유의 천당(천국)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

타골은 동부 인도 갠지스 강 하류에 있는 도시 캘커타 출신이다. 자신의 조국도 영국 식민지하에서 신음하고 있어 한국을 더 애틋하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인도는 고대 한국인들에게 어떤 나라였을까. 신라시대 인도는 ‘천축국(天竺國)’으로 불렸다. 당시 불자로서 석가모니의 탄생지를 다녀온다는 것은 필생의 염원이었다.

신라 성덕왕 대 혜초스님은 수만리나 되는 천축국을 다녀와 기행문을 남겼다. 스님은 인도 동북부의 여러 나라와 석가가 열반한 쿠시나국, 그리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녹야원(鹿野苑)을 돌아봤다. 대장정 끝에 법화경의 주 무대인 영취산(靈鷲山)까지 순례한 것이다.

혜초스님만이 아니었다. 7세기 말 당나라 스님 의정은 천축국을 다녀오면서 ‘대당구법 서역  고승전’을 썼다. 그런데 이 가운데 7명의 신라 승과 1명의 고구려 승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다. 고대에 많은 신라 승들이 천축국으로 떠났으며 때로는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이들도 있었다.

우리 설화에는 가야국 김수로왕의 아내 허 황후가 아유타국 공주로 등장한다. 혜초스님 시기보다 훨씬 오래전인 2천년 전 일이다. 아유타국은 지금 인도 남동부에 위치한 ‘아요디아’시로 추정되고 있다.

허황후가 인도에서 떠나 중국 스촨성을 거쳐 양자강과 황해를 건너 김해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허황후가 김수로왕의 배필이 된 설화는 다음과 같다.

-(전략)… 산 밖 별포 나루터에 배를 매고 육지에 올라 높은 언덕에 쉬며 입고 온 비단 바지를 벗어 산령에게 폐백으로 바쳤다.… 이에 왕은 왕후와 함께 침전에 드니 왕후는 조용히 말했다. ‘저는 본래 아유타국 공주인데, 성은 허(許)이고 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16세입니다. (중략)… 가락국왕은 하늘이 내려 보내 왕위에 올라 정치를 하게 했으니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분이십니다. …왕께서 배필을 못 구했으니 저는 배를 타고 멀리 번도를 찾아 이제 몸을 가다듬고 외람되이 용안을 가까이하게 되었습니다.’ …(하략)-

불가에서 전지전능한 힘을 가졌다는 관음보살이 있는 낙가산(洛迦山)이란 이름도 인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화엄경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구도를 위해 세상을 돌아다니던 중 인도 보타 낙가산에 도착하여 관음보살을 만났다’는 구절이 나온다. 관음과 선재동자의 판타지는 고려불화 수월관음도에서 찬란하게 표현되어 세계 최고의 미술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낙가산 관음신앙은 중국 해안을 걸쳐 한반도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해수관음을 모신 동해 낙산사와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암, 육지에서는 청주 낙가산 등이 유명하다.

한국과 인도가 경제협력은 물론 최근 안보 협력까지 강화하고 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인도 정부는 총 7천억에 달하는 한국산 K-9 자주포를 수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최근 사드 배치로 중국의 한국 견제가 우려 수준에 이르고 있는 시기여서 반가운 소식이다.

인구 12억의 인도는 개척할 부분이 많은 거대한 잠재국이다. 현지에서 한국의 전통문화와 음식은 인기가 높다고 한다. 건강, 미용, 프랜차이즈 업종에 대한 진출 전망도 좋다는 것이다. 두 나라의 경제, 안보 협력이 전통적인 유대를 바탕으로 ‘아시아 번영의 등불’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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