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준 민속 칼럼니스트 

 

우리들의 어머니, 할머니는 장독대를 정성스레 여겼다. 짬이 나면 윤기가 나도록 옹기를 행주로 훔쳤다. 행여 잡초라도 나면 다 뽑아냈다. 장독대 둘레는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를 심고 상추도 심어 예쁘게 만들었다.

내 어머니는 왜 그렇게 장독대를 정성스레 가꾸셨을까?

장독대의 사전적 의미는 ‘장독 따위를 놓아두려고 뜰 안에 좀 높직하게 만들어 놓은 곳’이다. 

장독대에는 된장, 고추장, 간장, 젓갈, 소금 등 가족들이 먹을 장과 양념류를 보관해왔다. 

우리나라 음식문화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장(醬)이다. 진수의 삼국지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서 동이족(고구려인)은 ‘장 담그는 솜씨가 훌륭하다’ ‘발해의 명물은 책성에서 생산되는 된장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고대시대부터 우리 민족은 장을 만들어 먹었고 이 음식문화가 고려,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그런데 장독대가 우리 조상들이 수천년 동안 발효시켜 온 민속들이 가득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장독대는 그 집안에서 바람도 잘 통하고 볕이 잘 드는 곳에 만들었다. 가족이 아니면 장독대 출입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의 신당(神堂)이기 때문에 신성한 곳으로 여겨 왔던 것이다.

장독대에는 여러 신들이 모셔졌다. 집안의 터를 관장하는 터주신, 풍어·풍농을 관장하는 영등할머니신(바람의 신), 장맛을 관장하는 철륭신,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신(북두칠성)을 모셔왔다. 특히 칠성신은 새벽에 정화수(용 알 뜨기)를 떠 놓고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천지신명께 빌어 왔던 대상이기도 하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 장독대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첫째, 외국 문화·종교의 유입으로 남의 문화와 남의 종교는 고급스럽고 우리 전통 민간신앙은 저급하다고 여겼다. 급기야는 미신이라 이름 붙이고 우리 스스로 선조들이 가꾸어 온 문화를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얼이 빠지고 혼 빠진 민족이 돼 버린 것이다.

둘째, 급격한 도시화로 주거형태가 아파트문화로 바뀌면서 국민의 60%가 공동주택에서 생활한다. 아파트에서는 장독대를 만들 수 없고 장독은 소품으로 취급 받고 있다. 이렇다보니 도시 주부들은 장 담그기를 하지 않는다. 당연히 장을 어떻게 담그는지도 모른다. 그냥 장이 떨어지면 슈퍼나 마트에서 사 먹으면 그만이다.

지금부터라도 형편이 되는 가정은 장독대도 만들고 장 담그기도 익혀서 아들딸 며느리에게 ‘장(醬) 문화’를 전수해야 된다.

왜냐하면 선조들이 장을 담근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 문화의 원형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원형을 모른다는 것은 자기 정체성(역사)을 잊은 것이고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의 역할은 수천년 전승돼 온 장 문화를 우리 세대에서 끝내지 말고 미래 세대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장을 먹건 말건, 장독대를 만들지 말지는 후손들에게 맡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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