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4차 산업혁명 관련 규제는 다 풀어라. 대신 개인정보 활용 범죄는 최고 형량으로 처벌하라.” 지난달 23일 모 경제지 주관으로 열린 제26차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에서 롤랜드버거와 공동으로 낸 제2 한국보고서(D-Checking Korea)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다. 또한 이 보고서는 “한국은 인구와 소비, 고용, 투자가 모두 감소하는 4대 절벽에 직면하고 있는데 4차 산업혁명이 이러한 흐름을 되돌리고 새로운 고용 창출과 함께 소비, 투자도 반전시킬 수 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3D프린팅 등의 기반기술과 여기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상품·서비스로 구성되는데 기반기술은 선진국이 이미 선점했고 한국은 출발이 늦었다고 한다.

지난해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4차 산업혁명 기반기술 이용가능성 조사에서도 한국은 10점 만점에 5.6점을 받아 전체 평균(5.9점)에도 못 미쳤다. 우리는 정보기술(IT)강국이라 자부하며 첨단 기술에서 나름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해 왔으나 객관적인 평가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실제 4차 산업혁명 기반기술에서 한국이 강점을 보이는 분야는 모바일·인터넷·앱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는 기반기술을 선진국에 선점 당했다고 해서 비관할 필요는 없다. 4차 산업의 가치사슬 구조를 보면 기반기술과 이에 파생되는 상품·서비스로 구성된다. 기반기술보다는 자율주행차 드론 e커머스 원격의료 등 파생상품의 시장 규모가 훨씬 크고 무궁무진하다. 실례로 ICT 기반기술 특허를 보유한 퀄컴은 스마트폰 제조업체들로부터 막대한 로열티 수입을 올리고 있지만 더 큰 수익은 스마트폰을 직접 만드는 삼성전자나 애플이 올리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4차 산업 최종 소비재 영역에서 강자가 되려면 선결돼야 할 과제가 있다. 규제 혁파다. 우리는 빅데이터 수집·활용에서 가장 제약이 심한 국가다. 국내 지도 데이터의 구글 반출 불허로 한국이 구글맵 서비스의 예외 지대가 되면서 국내산 지도 기반으로 설계된 국내 애플리케이션은 해외 진출을 하려면 구글맵 버전으로 재개발해야만 한다. 현대차는 2015년 구글의 자동차용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 오토(Android Auto)’를 미국에서 상용화하는 데 성공하고 세계 40개국에서 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정작 국내에는 출시하지 못했다. 자율주행차 개발에 있어서도 최대 걸림돌은 규제다. 개인정보보호법과 위치정보법 등이 데이터 취합 및 활용을 제한하고 있고, 정보통신망법은 해외 애플리케이션의 사용을 가로막는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국가들의 규제 체계는 우리와 정반대다. 미국은 허용되지 않는 몇 가지를 열거하고, 자유롭게 혁신이 일어날 수 있도록 사후에 허가를 받는 네거티브 시스템이다. 미국은 정부가 나서 빅데이터를 제공하기도 한다. 2015년 발포한 ‘정밀의료계획’에는 의사, 제약사, 연구인력 등에 비식별 조치를 거친 환자 100만명의 유전자, 식습관, 운동량, 진료기록 정보를 연구 목적으로 허용했다. 중국도 일단 새로운 사업을 하게 한 후 문제가 있으면 일부 규제를 통해 미세 조정하며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무게가 116㎏ 이하일 경우 당국 사전승인 없이 비행이 가능하도록 해 전 세계 드론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영국은 핀테크 기업이 새로운 금융상품을 제한 없이 테스트해 볼 수 있도록 해 연간 성장률은 74%를 상회한다.

4차 산업은 기본적으로 상상과 아이디어 싸움이다. 규제가 아이디어 발현을 가로막고 있는 것부터 고쳐야 한다. ‘보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개인정보 분야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개인정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허용해 상업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되 개인정보를 악용한 범죄는 최고 수준의 형벌로 다스려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등에 흩어져 있는 개인정보 관련 규정을 단일화하고 상호 상충하거나 이중규제는 없애야 한다. 빅데이터 활용을 쉽게 하도록 통계나 연구, 시장조사, 마케팅 등에는 비식별화 조치를 조건으로 정보 주체 동의 없이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차제에 우리나라의 규제 체계도 네거티브 형태로 바꿔야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무난히 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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