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한나라 12년(기원전 195년) 고조는 경포의 반란을 진압하고 장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뒤부터 고조는 병세가 위독해지자 태자를 여의로 바꿨으면 하는 마음이 더욱 높아져갔다.

유후 장량이 옳지 않음을 간언해도 고조는 듣지 않았다. 그는 병을 앓고 있다는 핑계로 나랏일도 돌보지 않았다. 태자 태부(태자의 스승)인 숙손통이 고금의 예를 들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설득했을 때에도 고조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 무렵 궁궐에서 주연이 베풀어져 태자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태자 뒤에는 4명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모두 80세를 넘은 노인으로 수염이나 눈썹까지 새하얗고 그들의 모습에는 주위를 제압하는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고조는 처음 보는 인물들이라 이상하게 생각하고 곁에 있는 시종에게 물었다.

“저들은 누구냐?”

그러자 네 노인은 고조 앞에 나아가 자신들의 이름을 밝혔다. 그들은 동원공, 녹리 선생, 기리계, 하환공이었다.

고조는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오오 이제까지 어디에 계시었소? 수년 전부터 찾고 있었는데 나를 피하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 보아하니 태자하고는 사귀고 있는 것 같은데 어찌된 영문이오?”

노인들이 공손히 말했다.

“태자는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남에게도 겸손한 마음으로 대해 주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태자를 따르고 태자를 위해서는 목숨조차 아까워하는 자가 없다기에 이렇게 나타난 것이옵니다.”

고조는 노인들에게 고마운 뜻을 전하고 앞으로도 태자를 잘 부탁한다고 청했다.

노인들은 고조의 장수를 기원하는 술잔을 돌리고 물러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고조는 척 부인을 불러 네 명의 노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여의를 태자로 삼고 싶었으나 태자에게는 저 네 사람이 붙어 있어 내 힘으로 이제는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네. 내가 죽으면 그대는 여후를 주인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말을 듣고 척 부인이 슬피 울었다. 고조가 다시 말했다.

“초무를 한 번 추어주게. 내가 초가를 불러 줄 테니.”

고조는 그렇게 말하고 초가를 읊었다.

- 큰 새는 하늘 높이 천 리를 날으네/ 어느 새 날개가 튼튼해져 사해를 건너네/ 사해를 나는 날개를 어찌 막으리오/ 화살이 있다 해도 쏠 수가 없구나. -

노래는 되풀이 됐다. 척 부인의 뺨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고조가 자리에서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자 주연은 끝났다.

태자는 4명의 노인 덕분에 그 지위를 지키게 됐다.

이 네 사람을 초빙한 인물은 유후 장량이었다.

드디어 고조가 죽자 여 태후는 여씨 일족을 왕으로 봉할 계획을 세우고 그 문제를 먼저 우승상 왕릉에게 물었다. 왕릉은 한마디로 잘랐다.

“안 됩니다.”

여 태후는 이어 좌승상 진평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자 진평은 달랐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여 태후는 자기의 의견에 반대한 왕릉이 못마땅해서 그를 어린 황제를 지키는 태부로 좌천시킴으로 조정의 일선에서 쫓아내 버렸다.

왕릉은 병을 핑계로 태부 자리를 거절했다. 그 뒤로 집에 틀어박힌 채 조정에 나가는 일도 그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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