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 ㈔효창원 7위선열 기념사업회 상임고문

 

“유방백세(遺芳百世), 빛나는 그 이름 후세에 길이 빛나리.”

김구 선생이 효창공원 삼의사 묘소 묘단에 쓴 글이다. 해방 후 환국한 김구 선생은 당시 일본에 있는 박열 선생에게 일본 땅에서 순국한 삼의사(윤봉길, 이봉창, 백정기)의 유해발굴을 요청해 1946년 5월 15일 이분들의 유해를 봉환해 7월 6일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했다.

이때 김구 선생은 삼의사 묘역에 한 개의 가묘를 더 만들었다. 바로 안중근 의사의 묘다. 비록 아직까지 그 유해를 찾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꼭 그 유해를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리하여 안 의사가 그토록 그리던 해방된 조국의 품으로 모셔 오리라는 염원. 아마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공원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현장에서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다음해인 3월 26일 여순감옥에서 순국한다. 안 의사는 자신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면회 온 두 동생에게 조국이 해방되거든 꼭 자신의 유해를 조국의 품에 다시금 묻어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하지만 안 의사의 유해는 10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안타깝고 죄스럽게도 안 의사의 유해가 묻힌 장소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관민차원에서 안 의사의 유해가 매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여순감옥 뒤편 공동묘지와 그 부근에 대한 발굴을 추진했으나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다. 더구나 매장지로 가장 유력한 여순감옥 옆, 동쪽 산의 언덕에는 이미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있어 유해를 영원히 찾지 못할 수도 있는 절망스러운 실정이다.

그렇다고 해도 유해발굴사업을 멈춰서는 안 된다. 언젠가는 꼭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안 의사의 유해를 찾기까지는 지금까지처럼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오랜 인내와 변치 않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유해발굴사업과는 별개로 이제는 안 의사를 기리기 위한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조국을 위해, 동양평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그를, 그가 떠난 지 한 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에 와서야 다시금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한참 늦은 이제라도, 그를 제대로 떠나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안중근 의사 국가장’을 건의해본다. 나라를 위해 살신성인하신 순국선열의 장례식을 아직까지도 치루지 못한 것은 후손 된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 일각에서도 안중근 의사의 국가장 거행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으니 지금이 그 적기라고 본다. 관혼상제의 4가지 예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은 사람을 정중히 모시는 상례(喪禮)다.

유해를 찾을 수 없는 등 불가피한 상황에는 고인의 유품을 묻는 것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다. 안 의사의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으니 ‘안중근 의사의 유품장례식’을 국가 차원에서 온 국민의 마음을 담아 거족적으로 거행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살아 있는 정부라면, 안 의사의 혼이 깃든 유품을 모시고 다가오는 광복절 또는 명년 순국일에 안중근 의사 국가장을 거행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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