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무지개다리 중 가장 자연스럽고 우아하다는 평가를 받는 반원형의 승선교(보물 제400호), 그 안으로 선암사의 출입용 문루인 강선루가 보인다.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오른다’는 뜻을 담은 승선교는 예부터 속세와 신선의 세계를 구분하는 다리로 여겨졌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승선교 지나 속세를 떠나서
자연 어우러진 ‘늙은 절집’ 만나
600년 넘은 선암매 산사 둘러
세계 유일 뒷간 문화재도 눈길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하늘을 거스르지 않는 땅 전남 순천(順天), 그곳에 가면 조계산(884.3m)이 가부좌를 틀고 있다. 조계산 자락에는 15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천년고찰 ‘선암사(仙巖寺)’가 깃들어 있다. 신선이 내린 바위라고 하여 선암사라 부른다. 옛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아늑하고 정갈한 느낌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산사다.

한국불교태고종 태고총림 선암사는 종단의 최고 어른이신 종정 혜초스님이 머무르는 곳이기도 하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법당 내에 울려 퍼지는 청아한 스님의 독경소리는 비록 불자가 아니더라도 경건함을 느낄 수 있다.

또 하나의 매력은 다수의 보물과 중요문화재로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고 아름다운 사찰로 유명하다는 것이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전 문화재청장) 교수가 방송프로에 나와 그간 다년 본 유적지 중 가장 인상 깊고 갈 때마다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극찬한 사찰이다.

▲ 원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화와 각황전 돌담길의 홍매화가 활짝 피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선암매(매화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됐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조계산 자락에 가부좌 튼 천년고찰

따사로운 봄날이 되면 매화향 가득한 산사를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나도 3월말 서울에서 승용차를 타고 선암사를 향해 달렸다. 오후 1시경 선암사 주차장에 도착,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카메라를 메고 길을 따라 산사로 향했다. 순천 시내버스(1번, 16번) 등 차편도 자주 있어 관광하기에 불편하지 않다.

부드러운 흙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우거진 숲 사이로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산새 소리로 마음마저 맑아지는 느낌이다. 10분쯤 걸었을까.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무지개다리 중 가장 자연스럽고 우아하다는 평을 듣는 다리가 보인다. 반원형의 승선교(보물 제400호)가 물에 비치어 완전한 원형을 이루며 그 안에 강선루가 자리하고 있다.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오른다는 뜻을 담은 승선교는 예부터 속세와 신선의 세계를 구분하는 다리로 여겨졌다. 이곳을 지나 선암사의 출입용 문루인 ‘강선루’를 만날 수 있다. 신선이 내려오는 곳이라는 뜻의 강선루. 곧 선계(仙界)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다. 선암사의 강선루는 대부분 사찰과 달리 문루가 일주문 밖에 있는 것이 이채롭다. 승선교를 지나 절에 들어가는 입구에, 긴 알 모양의 연못 하나가 보인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46호 ‘삼인당’이다. 오르는 사람마다 찰칵 소리와 함께 카메라에 추억을 담는다.

자연과 어우러진 산사는 그 자체가 문화재의 보고다. 보물 제1311호 선암사 대웅전을 비롯해 문화재인 일주문, 팔상전, 불조전, 원통전, 해우소(화장실). 이것뿐만 아니다. 수령 600년 된 천연기념물 선암매(매화나무) 등 볼거리로 풍부하다. 늙은 절집이라는 표현이 정말 자연스럽다. 어느 건물도 튀지 않는다는 점이 더욱 매력적이다. 단청 색깔이 물 빠진 청바지처럼 빛이 바래 은은하기만 하다. 문화재 평가 위원들도 감탄한 곳이 바로 선암사다.

작은 언덕을 오르면 선암사 출입구인 ‘일주문(一柱門)’에 다다른다. 눈길을 끄는 곳이 또 하나가 있는데, 바로 해우소(절에서 화장실을 일컫는 말)다. 선암사 해우소(문화재자료 제214호)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180년 전통에 빛나는 영국 첼시 플라워 쇼에서 영예의 최고상을 받은 곳이다. 뒷간(화장실)으로는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됐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되고, 가장 멋들어진 해우소이다. T자형 목조건물에 맞배지붕으로, 언뜻 보면 날아갈 듯한 2층 누각이다. 마룻바닥은 시골 부잣집 대청마루처럼 튼튼하고 널찍하며, 왼쪽은 남자용, 오른쪽은 여자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관광객들도 궁금해서인지 거의 들여다본다.

▲ 전남 순천 조계산 자락에 위치한 한국불교태고종 태고총림 선암사 경내에 보물 제1311호 대웅전이 장엄한 위엄을 드러내며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매화향 가득한 보물창고

일주문을 지나 선암사 중심에 부처상이 모셔진 대웅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순조 25년(1825)에 중창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 지붕집으로 아담하지만 장중한 멋과 품격을 드러내고 있다. 내부는 빛바랜 외부와 달리 층단을 이룬 우물천장으로 장엄하게 단장됐다. 석가모니불을 초대형으로 중앙 상단에 배치하고 협시상들을 작게 그려 석가모니불의 위엄을 높였다.

대웅전 앞 두 개의 삼층석탑(보물 제395호)은 마치 대웅전을 호위하듯 우뚝 서 있다. 높이 4.7m의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화강석으로 만들어졌다. 1986년 동탑을 해체․보수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석가여래의 생애를 묘사한 팔상도가 있는 팔상전, 화려한 꽃살문이 돋보이는 원통전 등 지방 문화재 10여점을 보유하고 있다.

선암사 곳곳엔 나무와 꽃이 지천이다. 문화재들도 많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것은 단연 수령 600여년이 넘는 매화나무. 나무의 기품 있는 형태와 짙은 향은 ‘선암매(仙巖梅)’라 이름 짓고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될 정도로 우아하다. 붉은 홍매화, 푸른 기운이 감도는 청매화, 옥양목처럼 흰 백매화가 산사에 두루 심어져 있다. 원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화는 정일품 소나무처럼 우아하고 기품이 있어 눈길을 사라잡았다. 각황전 돌담길의 홍매화도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그 향기가 온 절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다. 선암사 숲길은 ‘전국 아름다운 숲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피톤치드를 내뿜는 편백나무 숲은 삼림욕장으로서 안성맞춤이다.

▲ 천연기념물 제488호 선암매(매화나무). ⓒ천지일보(뉴스천지)

◆천년의 역사 이어온 선암사

조계산 자락에 천년고찰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에 아도화상이 세운 비로암으로 창건했다는 설과 통일신라 875년(헌강왕 5)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화가 전해온다.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 의천이 중건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거의 폐사로 방치된 것을 1660년(현종 1)에 중창했으며, 영조 때의 화재로 폐사된 것을 1824년(순조 24) 해붕이 다시 중창했다. 6.25전쟁으로 소실돼 지금은 20여동의 당우(큰집과 작은집 아우른 말)만이 남아 있지만 그전에는 불각 9동, 요 25동, 누문 31동으로 도합 65동의 대가람이었다. 이 절은 선종·교종 양파의 대표적 가람으로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송광사와 쌍벽을 이루었던 수련도량으로 유명하다. 

▲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해우소(문화재자료 제214호, 화장실)도 눈길을 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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