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최근 자동차 바퀴 휠의 오래 묵은 때를 깨끗이 지웠다. 그동안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서비스로 자동세차를 하던 13년 된 자동차를 큰 맘 먹고 구석구석을 닦았다. 그동안 자동세차를 하면서 때가 잘 지워지지 않았던 바퀴 휠은 상당히 더러워진 상태였다. 바퀴 휠에 붙은 찌든 때는 손으로 일일이 닦아내야 했다. 자동세차는 수분이면 끝나지만, 바퀴 휠 세차는 눌러붙은 때가 잘 빠지지 않아 수십분이 걸렸다. 정성껏 닦아내니 하얀 휠 색깔이 깨끗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세차장에서 운전을 하고 나오면서 마치 내 몸을 잘 닦아낸 듯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수만원이 든 휠 세차였지만 가성비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왜 진작 휠 세차를 하지 않았을까, 후회도 들었다. 그동안 기름값을 치르고 공짜로 한 자동세차의 혜택 때문에 돈이 드는 휠 세차를 꺼렸던 것이 얼마나 우둔한 행위였던가. 눈에 띄는 부분만 손 보고 틈새 구석구석을 신경쓰지 않는 생활방식에 대한 반성을 스스로 했다.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충격적인 1라운드 예선탈락을 맛본 한국야구팀의 결과를 보면서 자동차 바퀴 휠 세차 경험이 문득 떠올랐다. 언뜻 보면 별로 상관없는 듯하지만 내심 맥락상으로 서로 상통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세밀한 부분을 잘 관리하지 않는 공통점이다.

한국야구는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 2009 WBC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미국, 일본에 못지않은 야구 강국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2017 WBC에서 자국리그도 없이 유랑선수들로 구성된 이스라엘에 예상 밖의 패배를 당하고, 정상전력을 구축하지 못한 대만에게마저 난타전을 벌인 경기 내용 등은 한마디로 한국야구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동안 메이저리거를 다수 배출하며 야구 수준에 남다른 긍지를 가져왔던 한국은 사상 최악의 예선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무력감에 빠졌다.

한국야구가 이처럼 충격적인 결과를 접한 것은 외형적인 전력강화에만 신경을 써온 탓이라고 본다. 이번 대표팀의 경우 기존 멤버들이 부상과 여러 개인적인 이유 등으로 빠지면서 정상적인 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는 것을 부진의 이유로 꼽았다. 허나 지난 수년간 한국야구는 국제무대에 내세울 만한 유망주들을 키우지 못하고 그때그때 반짝하는 선수들로 채워가며 국제대회에 임했다. 세대교체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대표팀을 꾸릴 때 임시방편으로 선수들을 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전력 관리의 허점이 이번에 성적부진으로 그대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자동세차로만 차를 번지르르하게 해놓고 바퀴 휠 부분 등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은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이번 대표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마운드를 이끌어 나갈 확실한 에이스가 없었다는 것이다. 믿을 만한 투수를 확보하지 않고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한다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무모한 일이다. 한국야구는 그동안 이대호, 이용규 등 기존 타자들에다 신인 투수급으로 수혈을 해가며 강국의 체면을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할 당시, 한국야구는 류현진, 윤석민, 김광현 등을 앞세워 일본 등 강팀들을 물리치고 정상을 차지할 수 있었다. 당시 한국야구는 오랫동안 유망주 투수를 발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소기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선수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듯하나 확실한 결정력을 갖춘 선수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기존 멤버들도 기량을 새롭게 키우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현재에 안주하는 무기력한 모습들이 대부분이다. 고액 연봉을 받는 대부분의 대표선수들은 강한 정신력으로 최선을 다하기보다 부상을 두려워하는 소극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경우가 많다. 이번 WBC에서 전통의 강호 미국과 일본이 4강을 진출하고, 신예 푸에르토리코와 네덜란드가 새롭게 부상하며 상위권으로 박차고 올라온 것과 비교된다. 

한국야구가 이번 WBC에서 쓰라린 패배를 교훈삼아 오래 쌓였던 문제점을 일소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출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번 기회에 구석구석 어두운 틈새를 깨끗이 정리하면 휠 세차를 한 자동차가 싱싱 달리듯 한국야구도 쾌속 행진을 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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