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강화군 선원면 금월리 한 농가의 돼지를 살축하는 모습. 이날 군 관계자는 강화군내 12.2% 살축작업이 완료됐다고 전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정부는 보상 대책 ‘침묵’… 농민들 앞길은 ‘막막’ 마음은 ‘먹먹’

[뉴스천지=백하나 기자] “다음 달이면 빚내며 키워 온 돼지들을 팔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이때 구제역이 생길게 뭡니까···.”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부근에서 돼지 1300여 마리를 키우는 축산농민 신모(남, 50대) 씨는 돼지 매립 3시간여를 눈앞에 두고도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 신음하며 말했다.

그는 “돼지를 1000마리씩이나 키운다고 하면 굉장한 부자일 것 같지만, 사실 빚이 억대로 있다”고 말했다.

그는 먹성 좋은 돼지들의 사료 값을 대기 위해 지난 6개월간 한 달에 적게는 500만 원 많게는 1000만 원까지 은행 빚을 내며 돼지를 키웠다. 그러던 것이 이제 다음 날이면 6개월간 키워 오던 돼지를 팔아 이자를 갚아 나갈 수 있었는데 구제역이 터져 버린 것이다.

이제 모든 돼지를 매립해 버렸으니 눈덩이처럼 불어날 이자를 갚아 나갈 길이 없어 신 씨는 더욱 답답해했다. 신 씨는 강화에 구제역이 터졌다는 말을 들은 10일부터 곡기마저 끊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가 돼지 사육을 시작한 건 20여 년 전. 이민 생활을 청산하고 강화로 와서 돼지만을 키워 왔지만 그는 지금에야 그때 선택이 잘못됐음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물음에 그는 “막막하기만 하다. 다신 돼지 사육을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 강화도 선원면에 사는 전 할아버지는 1살배기 소를 내달이면 시장에 내 놓을 참이었는데 구제역이 발생하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할아버지의 소는 평소 사람을 잘 따라서 귀여움을 받는 소였다고 할아버지는 전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현실이 막막한 것은 대규모 축산 농가뿐만이 아니었다. 3마리 소를 집 마당에서 키우는 전모(85, 강화군 선원면 금월리) 할아버지도 살처분 방침을 빗겨갈 순 없었다.

그는 “자식처럼 키우던 소가 산 채로 매장되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20여 년 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마흔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간 아들 하나와 소를 키우며 살아온 이 할아버지는 소를 아들의 장가 밑천으로, 유일한 생계수단으로 여기며 살아왔다고 전했다.

현재 6살 소 2마리와 1살 소 한 마리를 키우는 전 할아버지는 “소는 1년에 2마리씩 새끼를 낳는데 이 소를 1마리씩 팔아 전기료도 내고 교통비도 한다”며 “키우던 1살배기 소가 이제 어른 소가 돼서 내달에 팔려고 했는데 죽게 됐다”고 억울해했다.

강화군에서 만난 농민들은 하나같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구제역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기 위한 정부의 방침임을 이해하면서도 딱히 보상안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앞서 말한 신 씨는 “도살한 규모만큼 보상을 해준다 해도 당장 1~2년 동안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에서 가축을 키울 수 없는 데 그동안의 생계는 어떻게 하느냐”며 “정부가 딱히 구제책을 내 놓지 못할 것 같아 맥이 빠지기만 한다”고 전했다.

전 할아버지도 “무조건 소를 죽이는 것보다 우리 같이 어려운 사람들의 소는 검사를 해서 멀쩡한 소는 골라내고 사육을 계속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인천시 강화군에서는 12일 오후 5시까지 예방적 살처분 대상 우제류 2만 5854마리(211개 농가) 중 12.2%인 3155마리(16개 농가)의 살처분을 마쳤다고 밝혔다. 살축작업은 매립지 마련 등 준비 작업을 마치는 대로 내일 오전까지 마무리할 방침인 것으로 당국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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