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부부 등이 탑승한 러시아제 비행기가 10일 러시아 서부 스몰렌스크 공항에 접근하던 중 추락, 카친스키 대통령 등 97명의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연합뉴스)

[뉴스천지=장요한 기자]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 등 폴란드 정부대표단이 탑승한 비행기가 추락,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급 인사들을 한꺼번에 잃은 폴란드는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러시아 비상대책본부는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를 비롯한 폴란드 주요 인사 88명을 포함해 모두 96명이 탑승한 러시아제 Tu(투폴레프)-154 비행기가 10일 오전 10시 56분쯤(현지시각) 모스크바에서 서쪽으로 350km 떨어진 스몰렌스크 공항 부근에 추락,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11일 대책본부는 카친스키 대통령의 시신을 수습해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로 옮겼다. 대통령의 관이 12일 대통령 궁에서 일반에게 공개되면서 폴란드 국민들의 추모행렬은 절정에 달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브로니슬라브 코모로브스키 하원의장은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며 “여기에는 좌도, 우도 없다”고 슬픔을 표현했다.

카친스키 대통령과 갈등을 빚기도 했던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도 “우리는 폴란드 민주화를 위해 함께 일했다”며 “나중에 둘 간의 의견차이로 멀어졌지만 이제 그것은 지나간 역사의 한 장이 됐다”고 말했다.

폴란드 정부는 지난 11일 카친스키 대통령의 운구가 도착한 이후 일주일간 국장 절차에 들어갔으며, 러시아를 비롯해 유럽연합(EU)도 폴란드 국민에게 조의를 표하고 12일 하루를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유럽연합, 메르켈 독일 총리,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니콜라 프랑스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 등 세게 각각 정상들도 애도의 뜻을 표명했다.

러 비행기 추락원인, 조종사 과실에 무게

러시아 대통령은 사고 발생 직후 푸틴 총리를 사고 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약속하는 등 이번 사건이 양국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고 수습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러시아 검찰과 항공 당국에 따르면 사고기는 공항 주변에 짙은 안개가 낀 상태에서 착륙을 시도했고 활주로에서 300m 가량 떨어진 숲 속 나뭇가지 끝에 기체가 부딪힌 후 곧바로 땅으로 곤두박질치면서 폭발, 화재가 일어났다.

현재 사고 원인으로 조종사의 조정 미숙과 함께 기체 결함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사고 비행기가 첨단 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을 수는 있어도 어떤 기계적 결함에 의한 사고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왜 조종사가 관제탑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는지에 초점을 맞춰 조사를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사고의 원인을 규명해줄 비행기록장치(블랙박스) 중 하나가 발견됐다. 검찰은 이에 대한 분석작업이 끝나면 정확한 원인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번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라 폴란드와 러시아 관계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카친스키 대통령이 이번에 러시아를 방문한 것은 ‘카틴 숲 학살사건’ 70주년 추모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카틴 숲 학살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옛 소련 비밀경찰이 서부 스몰렌스크 인근 산림 지역인 카틴 숲에서 폴란드인 2만 2000명을 처형한 사건을 말한다.

소련은 이 학살이 나치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으나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면서 지금까지 폴란드와 러시아 간 과거사 앙금이 남아있다.

푸틴 총리는 70주년 추모식에 도널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를 처음으로 초대해 양국 간 화해 분위기를 이끌었으나 그동안 러시아 정부를 강력히 비판해온 카친스키 대통령은 초대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카친스키 대통령은 초대가 없더라도 폴란드의 최고 대표자로서 카틴을 방문할 것이라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결국 이날 카틴에서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별도로 추모식을 개최할 예정이었다.

한편, 갑작스런 대통령의 사망으로 폴란드는 국정 공백을 막기 위해 신속하게 비상체제를 가동했다. 또한 10월로 예정됐던 대통령 선거를 6월 중·하순으로 앞당겨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헌법에 따라 대통령의 권한은 보르니슬라브 코모로브스키 하원의장이 대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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