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인정돼 수많은 종교가 한 데 어울려 살고 있는 다종교 국가다. 서양이나 중국에서 들어온 외래 종교부터 한국에서 자생한 종교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각 종단들은 정착하기까지 우리나라 곳곳에서 박해와 가난을 이기며 포교를 해왔고, 그 흔적은 곳곳에 남아 종단들의 성지가 됐다. 사실상 한반도는 여러 종교들의 성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에 본지는 ‘이웃 종교 알기’의 일환으로 각 종교의 성지들을 찾아가 탐방기를 연재한다.

 

▲전남 신안군 증도면에 위치한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 ⓒ천지일보(뉴스천지)

신안 섬 선교로 교회 6곳 개척
목회자·장로 700명 배출
‘섬 선교의 어머니’ 별칭 얻어

6.25전쟁 때 교인 돌보다 순교
현재 증도 주민 90% 개신교人

[천지일보=박완희 기자] 전남 신안군 내 수많은 섬 중 하나이자 주 섬인 증도(曾島). 이곳은 섬이 1004개 있다 해서 ‘천사의 섬’으로 불린다. 증도는 2012년과 2015년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선’에서 전국 2위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은 곳이다.

이곳에는 한국교회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최초 여성 순교자의 발자취가 있다. 기독교대한성결교(기성) 증동리교회 문준경(文俊卿, 1891~1950) 전도사이다. 증도 출신인 그는 배를 타고 다니면서까지 다도해(多島海) 지역 773개 섬 가운데 122곳에서 복음의 씨를 뿌렸다.

이같이 여러 섬을 왕래하느라 닳아서 바꿔 신은 고무신만 1년에 9켤레나 된다고 한다. 이에 그는 ‘고무신 목회’라 불렸다.

2013년 5월 그를 기리기 위한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이 증도에서 개관됐다. 그리고 지난해 2월 14일에는 전남도가 순교기념관 등 일대를 개신교 순례 성지로 개발하겠다고 밝히고 이에 대한 채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다 함께 전남 신안으로 종교 기행을 떠나보자.

▲문준경 전도사가 섬 전도를 위해 건너다닌 노두길. 증도와 화도 간 연결된 길이다. ⓒ천지일보(뉴스천지)

3월 초 이곳을 찾을 당시 때마침 햇볕이 종일 내리쬈다. 증도는 완연한 봄기운을 물씬 풍겼다. 이를 증명하듯 길가의 여기저기에는 야자수 나무가 심어져 있어 깊은 인상을 준다.

순교 기념관으로 향하는 동안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섬들끼리 엮어진 곳이라 그런지 바다가 툭툭 튀어나온다. 바다 위에선 부둣가에 묶인 조각배들이 떠다닌다.

바둑판같이 보이는 면적 462만㎡의 ‘태평염전(등록문화재 제360호)’도 스쳐 지나간다. 염전 한쪽에서 설비 등을 관리하는 일꾼들의 모습도 보였다.

특히 증도는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서 청정자연을 자랑하는 곳이다. 슬로시티라는 이름에 걸맞게 증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느림의 미학을 체감할 수 있다. ‘느려서 더 행복한 섬’이라고 적힌 팻말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문준경 전도사의 묘. ⓒ천지일보(뉴스천지)

◆최초 여성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는 1891년 신안 암태면에서 태어나 1933년부터 1951년까지 지역 선교활동에 전념하면서 인근 섬 지역의 증동리교회와 대초리교회 등 6개 교회를 개척했다. 그는 김준곤 신학박사 등 700여명의 목회자와 장로를 배출해 ‘섬 선교의 어머니’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1908년 3월, 17세의 나이에 증도로 시집온 문 전도사는 아이를 낳지 못해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첩까지 보게 됐다. 이 같은 상황에 공허함이 생긴 그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목포로 떠나 살다가 1931년 이성봉 목사를 만나 전도사로서 삶을 시작했다.

6.25전쟁 당시 자신이 돌보고 있던 교인들이 걱정돼 이 목사 등 주변의 만류에도 다시 증도로 들어갔다가 공산군에 의해 1950년 10월 순교했다. 공산군은 전도를 많이 한다는 이유로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라며 그를 죽창과 총으로 사살했다.

증도에는 문 전도사의 복음 전파로 현재 주민의 90% 이상은 개신교인이고, 11개의 교회가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다.

이곳 일대를 여행하다 보면 문준경 전도사 순교 터와 그가 개척한 교회들, 개신교인들이 집단 학살당한 현장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기념관 2층 내부. ⓒ천지일보(뉴스천지)

◆순교기념관, 고난의 삶 고스란히

염전 주변 태평염생식물원에서 서쪽으로 6㎞가량 이동하면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이 나온다. 기념관 옆으로는 대형 십자가가 우뚝 서 있다. 3층짜리 건물인 기념관의 우측 외관에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라는 성구가 크게 붙어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문준경 전도사의 동상이 한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한국의 성결교회’ ‘인간 문준경 고난의 삶’ ‘사역을 준비하며’ ‘예수님을 영접하다’ 등 제목의 코너들이 나타난다. 문 전도사를 이해할 수 있는 전기(傳記)와 전시물들이다.

계단을 걸어 2층으로 올라가면 그가 사용한 ‘태반 단지’와 성경책 등 유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은 ‘박해와 헌신의 삶’ ‘순교 더 큰 사랑의 실현’ ‘그가 남긴 열매: 교회들’ ‘그가 남긴 열매: 사람들’ 등을 주제로 구성돼있다.

체험할 수 있는 코너도 보인다. 그가 전도하는 과정에서 1년에 고무신 9켤레가 닳도록 걸었다는 노두 길이 꾸며져 있어 바닥에 그려진 발자국을 따라 직접 걸어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이곳은 2층 면적의 약 1/3을 차지하는 크기의 세미나실이 있고, 3층은 예배당이다. 개관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주일은 휴관한다.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지. 무덤과 기념비 등이 모여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해안 바라보는 무덤과 기념비

순교기념관을 빠져나와 해안 길로 1㎞ 정도 이동하면 길가에 문준경 전도사 순교지가 보인다. 이곳에서는 갯벌 섞인 넓은 바다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그의 무덤과 기념비 등도 이곳에 모여 경치를 바라보고 있다.

현재 신안군 증도면사무소 옆 증동리교회에 문 전도사의 추모비가 있다. 원래 그의 무덤도 이 교회의 뒤편 산에 있었지만, 2005년 2월 이곳으로 이장됐다. ‘고문준경전도사순교지’라고 적힌 비석 등 5개와 그의 묘가 놓여 있다.

팻말에 적힌 순교지를 소개하는 글에 따르면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사랑을 전하고 실천한 그녀의 신앙과 숭고한 정신은 오늘날까지 목회자를 비롯한 많은 이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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