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은 동맹관계, 한미는 그저 파트너 관계일 뿐”이라는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발언이 도마 위에 올라 와 있다. 우리나라 위정자들과 관료들이 중국의 무역보복을 감수하고도 그토록 몸 달궈 구애해 온 한미관계의 결과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고 외교수장으로 한반도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한중일을 첫 방문한 틸러슨의 입에서는 “일본이 제일 중요한 나라다”는 발언으로 이어진다. 과거 2차대전 후, 포츠담회담에서 전쟁 당사자국인 일본 대신 아무런 이유 없이 약소국이라는 죄로 한반도의 허리는 잘려 나갔고 오늘에 이르렀으며, 여기에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주도적 역할을 한 지난 역사가 오버랩 되면서 망령이 되살아나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나아가 당초 틸러슨 국무장관의 미중외교회담을 통해 ‘사드문제 담판’과 ‘한국에 대한 무역 보복 문제’ 등에 대한 해결 내지 언급이 예견됐으나 결과는 ‘미중 관계개선’에 방점이 찍혀졌다. 물론 향후 미칠 파장을 우려해 비공개 회담으로 진행됐는지는 모르겠으나 공식적 언급은 일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당사자국인 한국과의 사전 의논도 조율도 힌트조차도 없었다. 한국정부의 외교는 철저히 유린당하고 있으며, 대외관계에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안일하면서도 관료적이며 형식적 대처가 낳은 결과라 봐지며, 사대주의적 외교에 길들여져 있는 습관적 외교는 한미 한중 한일 등 그 어디와도 실패한 외교가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위정자들과 관료들이 난국을 풀어나가는데 있어 살신성인의 정신과 자세와 자주적 외교철학만이 살 길이라는 사실을 지난 역사는 이미 교훈으로 남기며 깨닫게 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어록이 유독 맴도는 까닭이다.

오늘날이 자주권을 상실한 채, 친일 친러를 저울질하다 망국의 길을 자초한 구한말 치욕의 시대와 조금도 다르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러한 굴욕적 외교의 끝은 남북관계마저 최고조의 적대관계로 치닫게 하면서 그야말로 총체적 외교위기를 맞게 됐다.

세계관과 국가관 나아가 민족관의 터 위에서라야 명철하고 냉철하며 지혜롭고 현실적인 외교관(觀)과 철학이 나올 수 있다. 나무를 보기 위해선 반드시 숲을 먼저 봐야 한다는 이치가 여기에 해당된다. 관료의 구태의연함과 복지부동의 자세는 외세의 침략보다 더 무서운 망국으로 가는 첩경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세계는 지금 국수주의 자국우선주의 보호주의 등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새로운 사조(思潮)가 나타나 세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어도 위정자들과 관료들은 눈앞의 것만 바라볼 뿐 아둔해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

탄핵을 둘러싼 촛불 맞불이라는 자중지란은 외교관계에 약점으로 나타나면서 주변 강대국들은 한국을 희롱하듯 이것 저것 찔러 보고 있는 것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중국의 사드보복이 예견되자 기자들의 입장주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고, 적절한 대처를 하고 있다며 상투적인 발언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던 그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중국재정부장에게 회담을 제의했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틸러슨 국무장관과의 저녁 만찬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으니, 이보다 더 한심하고 굴욕적인 외교가 어디 있겠는가. 촛불이 탄핵을 가져오고 세계의 선망이 된 혁명이었다고는 하나, 진정한 혁명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혁명 뒤에 남은 것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처럼 조금도 다른 것도 나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혁명은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며 새로운 인물에 의한 새 시대를 가져와야 하며, 나아가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는 나라가 현실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지 못할 때는 정치권력의 틈바구니에서 국민들만 희생양 삼은 정적 죽이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다. 새 시대는커녕 답보상태에서 한 치 앞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정국의 현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시대, “급할수록 둘러가라”는 말처럼, 위정자들은 정권야욕에서 한발 물러나 유사이래 총체적 위기상황에 놓여있다는 한반도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속담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말이 있다. 틸러슨의 4박 5일 한중일 순방 기간 중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질서에 일대 격랑이 휘몰아칠 수도 있다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겼지만, 정작 당사자인 한국은 사드는 물론 그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자주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설정 없이 미봉책으로만 일관하며 외세에 속절없이 끌려가는 미숙하고 미련한 외교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질책에 겸허히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향의 트럼프와 김정은의 불장난에 한반도를 맡기는 또는 말려드는 어리석은 민족이 돼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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