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지면(紙面) 또는 전파 뉴스를 타고 알려지는 세상사들, 국내외 여러 가지 일들이 복잡하게 전개되면서 마음을 어지럽히곤 하는데, 휴일의 여유를 즐기며 그냥 집에 틀어박혀 있으니 만사가 조용하다. 헌정사에서 사상 유례가 없었던 ‘대통령 탄핵 인용’ 사건이 현실화된 이후 일주일 동안 우리 사회는 그동안 지속돼온 분열상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국론이 분열된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상처받은 국민 마음을 위무해주고 혼란을 수습할 중심추는 정치권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정당과 정치인들은 당장 눈앞에 다가온 ‘5월대선’이라는 횡재(?)를 만난 듯 무주공산의 절대 권력을 꿰차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말로만 국민이익이지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편을 가르며 선동하는 정치권이다. 이율배반적인 실상을 보아오면서 헌법상의 문제점이 드러난 지금도 그들은 권력구조를 개선해 국민을 위한 선진정치의 제도적 장치 마련보다는 대선에 유리한 국면만을 따지고 있으니, 이것이 현실의 거울에 비쳐진 우리 사회의 참모습이다.

최근 반년 사이 우리 국가·사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 지난 대선에서 ‘첫 여성 대통령’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박 전 대통령은 ‘국민행복’을 내세우고 4년 넘게 국정을 수행해왔다. 그 과정에서 최고지도자가 고집해온 관행의 절대권력을 빌미삼아 벌여온 일들이 속속들이 밝혀져 국내외 화젯거리가 됐고, 결국 대통령 파면이라는 정치적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과거엔 용인됐던 대통령의 관행이라도 이젠 어림없다는 것인데, 그만큼 우리 사회의 민의가 절대 권력을 제어할 수 있다는 반증이 됐다. 불행한 일이기는 하나 성숙한 민주주의를 재확인시킨 셈이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절대권력은 절대 망한다’는 금언을 되새기게 한 학습효과인 것이다. 이번 사건은 국가지도자의 면면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잘 알려준 산 교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위의 탈을 벗어나지 못한 채 독존(獨尊)의 늪에 빠진 기존 방식으로는 국민 마음을 얻지 못한다. 정도(正道)의 정치, 국민 눈높이를 모르고 국민과 불통하는 지도자는 국민으로부터 배제당하고, 탄핵 당한다는 그 진실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새겨야 할 것이다.

지난 며칠간 장안의 화제는 박 전 대통령의 사저 귀환에 얽힌 것과 대선몰이에 나선 정치이야기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 탄핵’ 사실 자체가 우리 국가·사회의 불행이 아닐 수 없는데, 각종 뉴스를 통한 무수한 내용들은 대통령의 무능과 책임을 따지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니까 비난받아 마땅하겠지만 국정을 견제해야 할 국회나 정치권은 책임이 없단 말인가. 지난 4년간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일들에 대해 여야 국회의원들은 의사당에서 또는 국정감사장에서 대정부활동을 했을 터인데, 비정상적인 국정을 모른 채 비켜지나간 그들에게도 분명 책임이 있건만 자성하는 정치인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정치인 때문이다.

대통령이 권좌에서 쫓겨난 일련의 과정은 불행한 국가사태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민주주의 하에서 민의(民意)라는 것이 얼마나 보석처럼 단단하고 빛나는 것인지를 확인시켜준 계기가 됐으니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적어도 최고지도자는 국민과의 지속적인 소통 없이는, 국민 마음을 정치적 거울에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서는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준 일대 역사적 사건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국가·사회의 안정과 국민생활의 안전을 위해 무한 봉사의 의무를 지니고 있는 정치지도자들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거듭 태어나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호(號)’는 건재해야 한다. 이 나라는 우리만이 살아갈 것이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이 ‘한국인’이라는 자긍심 속에서 자자손손(子子孫孫) 대를 이어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터전이 아닌가.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국내외 현실은 냉엄하고 긴박하다. 우리 사회가 보수 대 진보라는 이념으로 갈라져 있고 계층 간, 세대 간, 빈부 간 갈등이 내재돼 있어 언제 폭발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장미대선을 앞두고 정치권뿐만 아니라 민초들도 들떠있다. 값 비싼 홍역을 치렀으면 그 학습 효과로 앞으로는 만인이 존경하고 인정하는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으련만….

그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서정주 시인의 시 ‘국화 옆에서’ 끝 대목이 생각났다. ‘…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라는 내용이다. 혹자는 국화를 두고 “괴로움과 혼돈을 마무리하는 화해를 상징하는 꽃”이라고 한 바, 시(詩)에서처럼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한바탕 천둥이 울어대며 무서리가 그렇게 내렸던 것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였다. ‘국화 옆에서’ 시 내용에서 보듯, 온갖 풍상을 겪고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의 안정된 영상(影像)으로 귀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렵고 혼란스런 일들이 성숙한 사회와 더 나은 민주주의의 탄생, 우리 세대와 후손들이 마음 편히 살아갈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라 새기면 또한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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