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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문화칼럼]사라진 세 번 사양(辭讓) 미덕
뉴스천지  |  newscj@newscj.com
2017.03.19 16:4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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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고대 동양에서는 제후에 오르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었다. 비록 위선적이었지만, 세 번을 양보한다는 ‘삼양지덕(三讓之德)’의 예다. 이는 스스로 몸을 낮추는 겸양의식으로 오랜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간웅이자 영웅으로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는 조조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으나 황제직위를 세 번이나 거절하고 마지못해 받아들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의 아들 조비도 한나라 헌제에게 제위를 빼앗을 때도 세 번 사양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공자도 논어에서 이 덕을 칭송했다. “태백(泰伯)이란 분은 ‘덕의 극치(至德)’라 일컬을 만하구나. 천하를 세 번씩이나 사양하였는데도 백성들은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할 정도였다.” 태백은 고대 중국 상나라 대부로 오나라를 세운 인물. ‘제왕의 직위를 세 번 양보한 덕목’을 칭송한 역사가 오래 됐음을 알려주고 있다.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도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됐으나 세 번을 거절했다. 자신은 부덕하니 제왕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중신들의 간청으로 할 수 없이 왕위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격식을 지켰다.

신라 경순왕이 통째로 나라를 바칠 때 왕건은 세 번이나 양보했다. 겉으로는 자신이 부덕하여 신라의 사직을 받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왕건은 상대국 신라 귀족들과 민초들의 상심을 고려했던 것인가.

신라 도성을 급습, 경애왕을 자살케 하고 왕비를 겁간한 오만 방자한 견훤의 인품과는 달랐다. 전조의 역사를 부정하고 모두 적으로 삼은 견훤이나 태봉을 일으킨 자칭 황제 궁예의 말로는 참으로 비참했다. 백성들의 신망을 얻지 못하고 갈등을 조장하여 반역의 무리를 키운 것이다.

조선 개국 당시 이태조가 정도전 등 사류들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을 때도 세 번을 사양했다. 왕의 지위에 오르는 것은 시간 문제였으나 격식을 따랐던 것이다. 이태조가 무반으로 겸양의 예의를 지닌 데는 국사 무학대사의 충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종은 22세의 젊은 나이에 세자에서 왕위에 올랐다. 태종이 왕위를 양위하려고 하자 세종은 세 번이나 간곡히 거절한다. 태종은 이런 아들의 겸양을 속으로 기뻐하면서도 네 번째 당부에도 뜻을 굽히지 않자 버럭 화를 내기까지 했다. 겸양의 미덕을 잘 지킨 세종은 현군으로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숭앙 받지 않는가.

선조 때 퇴계 이황은 임금으로부터 여러 번 부름을 받았으나 건강과 부덕함을 들어 매번 사양했다. 퇴계는 고향에 은거하여 하지 못한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이다. 어명을 거역할 수 없어 단양, 풍기군수로 부임하자마자 직을 사임하는 상소를 올린다. 단양군수 재직 시에는 상소를 세 번 올렸다. 임금이 허락하지 않자 임지에서 짐을 싸들고 고향 안동으로 내려갔다.

차기 대통령 선거를 얼마 앞두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인물들이 많다. 자천, 타천 그 수가 엄청나며 별로 이름을 듣지 못했던 단체장들까지 출사표를 던졌다.

국가의 지도자는 겸양의 덕목을 지닌 인물이어야 한다. 자신만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남을 비하하며 역사마저 모두 부정하는 후보는 자격이 없다. 그런 인물이 대통령이 되면 민족의 화해와 통합은 어렵고 갈등의 골은 깊어져만 갈 것이다.

선거전이 본격 시작된 것도 아닌데 벌써 당선된 것처럼 행동하는 후보도 지금 한국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 한번쯤 사양하고 자기보다 훌륭한 인물을 위해 양보하는 삼양지덕을 실천하는 인물은 왜 없을까. 이 시대에는 세종이나 퇴계의 덕목을 닮은 지도자가 없다. 민심이 무엇인지 모르고 민심을 얻으려는 이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한국인들은 아직 겸양의 미덕을 가진 인물을 선호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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