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에가 머리를 든 모양 같다고 해 이름 붙여진 ‘잠두봉’ 위에 천주교순교자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천주교 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성지(주임 원종현 신부)가 오는 25일부터 ‘절두산순교성지 축성, 봉헌 50주년 수집유물 특별전-인 모멘텀(IN MOMENTUM)’을 개최한다. 전시회는 10월 21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파리외방전교회 레옹 피숑(한국명 송세흥, 1893∼1945) 신부와 한국천주교순교자현양회가 수집한 유물들이 공개된다. 또 여사울 계촌리 삽티리 등 박해 시대 교우촌에서 발굴된 유물을 바탕으로 제작한 ‘103위 성인 표준 영정’도 전시된다.

▲ 절두산순교성지 축성, 봉헌 50주년 수집유물 특별전-인 모멘텀(IN MOMENTUM) 포스터 (출처: 절두산순교성지)

절두산순교성지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절두산은 원래 불쑥 솟은 자태가 누에가 머리를 든 모양 같다고 해 잠두봉이라 불렸다. 잠두봉 바로 아래에는 조선시대 3대 나루 중 하나였던 양화나루 터가 있었는데, 잠두봉과 어울려 빼어난 비경을 자랑했다.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던 잠두봉은 1886년 병인박해로 천주교도들의 처형지가 됐고, 그 결과 잠두봉은 목이 잘린다는 의미의 ‘절두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886년 병인양요(조선 말기 천주교가 탄압받자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한 사건)로 프랑스 함대가 잠두봉 옆 양화나루까지 올라왔다 돌아가게 되는데, 이에 격분한 흥선대원군은 나루터 옆 잠두봉에 형장을 설치해 천주교인들을 처형하게 했다. 박해가 시작된 1866년부터 1871년까지 천주교 신자 8000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두산 치명터에서는 200여명이 참수를 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초 순교자인 이의송을 비롯한 순교자 13명은 현재 시복이 추진되고 있다.

1997년 절두산은 유적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사적 제399호(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로 지정됐다.

한국천주교회는 1966년 절두산 순교기념관 건립을 시작해 이듬해 완공해 축성식을 개최했다. 

▲ 천주교 신자들의 사형집행에 사용됐던 형구돌.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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