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탄핵으로 궐위된 대통령을 뽑는 대선(大選) 날짜가 5월 9일로 정해졌다. 탄핵 정국이 아니었으면 그저 여느 평범한 봄날과 다를 것이 없을 날이었다. 이 날을 향해 선거 분위기는 점차로 뜨겁게 또 더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 틀림없다. 이래서 운명적으로 2017년을 사는 우리는 봄 전체가 펄펄 끓어 넘치는 역사상 초유의 가장 더운 봄을 겪는 이례적인 체험을 하게 될 것 같다. 선거의 북새통에 정신이 팔리면 꽃피고 새 우는 생명의 봄인들 우리의 눈길을 끌 수가 없다. 시국이 아무리 중대하더라도 봄이 가면 세월도 덧없이 간다. 그렇기에 결단코 우리 모두는 특단의 의미를 부여하는 선거를 이참에 치러내어 세월을 낭비했다는 느낌이 추호라도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필코 국민의 신뢰와 신망을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유지해 나갈 유능하고 좋은 대통령과 새 권력을 창출해내어 나쁜 역사의 고리를 끊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국민의 신망을 저버린 대통령의 탄핵으로 국민들이 ‘분노’로 가득한 지금 형편 같아서는 선거는 치르나마나 당락의 결과는 야당 쪽의 어느 누군가로 정해져 있는 것이나 진배없어 보인다. 하지만 흔히 하는 얘기가 있다. 민심과 민심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는 여건의 변화에 변덕스러울 만큼 반응이 빠른 ‘생물(生物)’과 같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의 형편대로 시차의 이격(離隔)이 있는 장차의 결말이 꼭 그대로일 것이라는 보장은 있을 수 없다. 선거 캠페인 기간이 불과 두 달이기는 하지만 결코 짧다고만은 할 수 없다. 이 사이에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기로 한다면 여러 번 일어나고도 남으며 플레이어(player)들 간에 엎치락뒤치락도 여러 번 있을 수 있다. ‘분노’는 냄비의 끓는 물이나 다를 것이 없다. 불이 죽으면 곧 식어버리기 때문이다. 

야당이 만약 이 국민들의 분노를 선거 날까지 식지 않게 끌고 가는 ‘분노 프로모션(promotion)’과 ‘분노의 마케팅(marketing)’에 성공할 수만 있다면 결과는 더 말할 것 없이 지금 형편대로이기가 쉽다. 사실 ‘과거 적폐 청산’과 ‘탄핵세력과의 연정 불가’를 유독 강조하는 야당 주자는 이 같은 국민들의 ‘분노’를 어느 누구보다 가장 잘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분노 프로모션’이나 ‘분노 마케팅’을 독점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입장은 이미 단거리 경주를 몇 십 미터 앞에서 출발한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렇긴 하지만 밥상을 이미 받아 놓은 것 같은 자신감과 욕심이 지나쳐 간과하고 있는 것은 주권행사를 하는 국민들의 냉정하고 철저한 셈법이다. 국민들의 셈법은 차갑고 무섭다. 국민들이 아무리 ‘분노’에 몸을 떨고 있다고는 하지만 국민이 감동하는 국가의 백년대계와 행복지수를 높여줄 진솔하고 차분한 정책을 들고 나와야지 ‘분노’만을 노골적으로 선동하거나 지나치게 활용하려해서는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분노 프로모션’이나 ‘분노의 마케팅’은 ‘넘치면 모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나쁜 것’임을 일러주는 ‘과유불급(過猶不及; Too much is as bad as too little)’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독이자 약이고 적을 베기도 하지만 자신을 벨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다. 그럼에도 그걸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그런 우(愚)가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은 자못 흥미롭다.

일부 대선 주자들과 그에 열광하는 세력들이 과거 ‘주군(主君)’을 모시고 자신들이 영광을 누렸던 ‘과거’로 국민들을 끌고 가려 시도하는 것 역시 그런 류(類)의 실수라 할 수 있다. 우리 정치가 패거리로 갈리고 국민이 분열된 것은 부인할 수는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국민의 대다수가 밝은 미래를 꿈꾸면 꾸었지 과거로 회귀하려 한다고 볼 증거는 없다. 특히 과거 한 정권의 안보 외교 정책을 가지고서 그런 시도를 하려 하지만 그에 대해 그들이 기대하는 열화 같은 반향이 있었던 것 같지가 않다. 세월이 변한 것을 모르는가. 지금 상황에 요구되는 적확(的確)한 정책이 그때의 것일 수 없다. 그것 역시 변한다. 물론 열광하는 세력이 없을 수는 없지만 국민 대다수로부터의 열화 같은 반향은 솔직히 기대난이다. 바둑으로 친다면 도리어 이적수(利敵手) 내지 스스로를 궁지로 모는 자충수(自充手)이기 쉽다. ‘동작 그만!’, 군대에서 흔히 쓰는 용어다. 이 용어처럼 과거 한 정권에서 관련 분야의 고관대작을 지낸 몇몇 사람들이 현 정부의 안보 외교 분야에 종사하는 공무원들을 향해 ‘꼼짝 마라’ 했다든가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 말라’ ‘부역 행위를 말라’라고 했다든가 해서 국민들의 기가 막히게 했다. ‘사드’에 대해서는 ‘야밤에 도둑질 하듯 무기를 가져다 놓는 것’이라 했다든가.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혼신의 힘을 다해 이끌어 가는 대통령 대행체제의 공무원들에 대해 격려는 못할 망정 하는 말치고 참으로 해괴하고 해괴하다. 이런 말을 할 권리와 자격이 어디로부터 연유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는 필시 민주주의의 낭비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미래의 권력이 자신들의 손에 들어올 것이 분명해 보여도 이런 권력의 선발대, 점령군같은 소리를 자꾸 해대면 다 된 밥에 코 빠지는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지. 가당찮은 충고를 할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 그러고 싶은지 묻고 싶다.

어쨌든 선거 기간은 짧지만 이번 대선은 어느 때보다 복잡한 선거가 될 것 같다. 이합집산이 불 보듯 빤한 선거판, 주요 주자들이 얼른 정립되지 않은 채 혼란한 상황이 한동안 지속될 것 같은 예상이 그렇게 보는 근거가 된다. 뿐만 아니라 ‘분노’만으로 국민들이 새 지도자를 뽑는다고 보기에는 국민들의 셈법이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봐지는 것도 그에 대한 또 다른 근거다. 국민들은 지금까지 지도자 선택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을 만큼 다 겪어왔다. 그 덕분에 신중해지고 현명해졌다. 어쩌면 셈법이 발전되고 복잡해졌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는 이분법적인 단순한 진영논리가 잘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주자들이 국민을 분열시켜 패거리 진영 투표에 호소해 승리하려 한다면 이번 선거부터는 낡은 전법에 의존하는 것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더는 국민들이 터무니없는 포퓰리즘(populism)에 휘둘리거나 과거로의 회귀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도 않을 것이라고 볼 이유까지도 충분하다. 그렇다면 누구든지 미래지향적이고 진솔한 국리민복과 안정된 안보 외교 정책을 들고 나와 국민을 안심시키고 국민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주어야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상식적이다. 따라서 어떤 주자에게나 기회는 있다. 다만 그들 하기 나름에 승패가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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