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이 있는 삼성동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헌재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파면이 선고됐다면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석고대죄해도 부족할 것이다. 대통령 탄핵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요, 그 내용마저 헌재의 지적대로 죄질이 나쁘다. 게다가 뇌물죄를 포함해 크고 작은 형사범죄 혐의가 13가지에 이른다. 형사 피의자로 검찰 조사까지 예정돼 있다. 이쯤 되면 정말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자택으로 들어가는 심정은 비통하다 못해 참담한 심정일 것이다.

끝까지 오기를 보이나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달랐다. 삼성동 자택 앞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은 환한 미소를 보이며 심지어 지지자들을 향해 손까지 흔들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일부 친박계 정치인들과 일일이 악수까지 하는 ‘여유’를 보였다. 국민을 향해서는 죄송하다는 단 한마디의 말도 없던 박 대통령이 이처럼 지지자들을 향해 손까지 흔들며 마치 ‘금의환향’하는 듯한 모습은 국민 정서와는 멀어도 너무 멀다. 오기와 오만함이 그대로 묻어있는 모습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현장에 있던 친박계 의원에게 우회적인 입장을 밝혔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마치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들리는 대목이다. 그리고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박 전 대통령을 위해 팀을 만들어서 계속 ‘보좌’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다시 말하면 삼성동 자택을 중심으로 이른바 ‘삼성동계’가 꾸려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과거 ‘3김시대’의 상도동과 동교동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계보정치’가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치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듯이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정치는 과거 1970~80년대의 수준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비약적으로 발전돼 있다. 당연히 국민적 정치의식도 그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지난해 10월29일부터 134일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든 연인원 1600만명의 힘을 어찌 간과할 수 있겠는가. 세계사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일이다. 단 한 건의 사고도 폭력도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는 스스로 주워간 시민들이었다. 경찰의 수고를 들기 위해 경찰차에 붙인 스티커마저 스스로 떼어낸 시민들이다.

탄핵정국과 이후의 대선정국도 광장에서의 촛불 함성이 그 원동력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 파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강고한 기득권 체제를 바탕으로 하는 구체제를 끝내고 이제는 새로운 ‘국민주권체제’로 가기 위한 거대한 변혁의 물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적폐청산과 정치혁신은 그 수단일 뿐이다. 더 높은 민주주의와 더 큰 변화로의 여정이 이제 본격화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파면된 전직 대통령을 중심으로 ‘삼성동계’가 만들어진다면 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며 오만한 발상이겠는가. 부디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 교훈을 잊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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