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 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우리 형법 156조를 보면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굳이 법 규정에 기대지 않더라도 무고한 사람을 고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기본 상식이다. 

이런 무고죄는 유독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와 피해를 주고 있다. 상담현장에서 보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피의자들이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일단 무고죄로 피해자를 역고소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로 체감된다. 성폭력 피해자에서 하루아침에 피고인의 신분으로 뒤바뀌기는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25년 전에 만난 한 피해자가 있다. 그 분은 입사한 지 일주일 만에 회사 사장과 회식자리에서 마신 맥주 2잔에 완전히 취한 상태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1991년 당시에는 성폭력 신고율이 2%에 머물고 있던 시점이라 고소를 결심하기까지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 분은 검찰조사를 받던 중 검사에 의해 무고죄로 구속기소 됐는데, 이유는 피의자인 사장에게 금전적 피해 보상을 요구한 것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여성이 피해 다음 날 산부인과에 가서 상해 진단서를 떼고, 숙박업소에 가서 주인으로부터 어젯밤 입실할 때 많이 취한 상태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녹음한 ‘주도면밀한 피해자’였던 점도 무고죄 구성에 한몫을 한 것 같았다. 결국 이 사건은 피해자가 고소하기 전 성폭력상담소와의 전화상담을 통해 고소 시 어떤 증거들이 필요한지를 자세히 안내 받았다는 점과, 가해자로부터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은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라고 말했던 상담원의 법정진술, 관련 연구자료, 주변인의 탄원서 제출 등의 여러 노력으로 간신히 무고의 혐의를 벗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그분이 겪어야 했던 억울한 상황에 공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엊그제도 한 유명연예인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고소한 분이 무고죄로 기소됐다. 과연 이 분이 무고한 사람을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신고했을까, 아니면 무참하게 침해당한 인간으로서, 또 여성으로서의 존엄성을 되찾고자 정당하게 고소를 한 것일까. 그 진위는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다투게 된다. 여기에서의 관건은 무엇을 성폭력으로 판단하느냐일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를 너무 쉽게 ‘동의한 성관계’로 둔갑시킨다. 게다가 폭행 또는 협박을 요한다는 현행 강간죄의 구성요건이 이를 견고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이제는 성폭력 수사·재판 담당자들이 성폭력 특성을 이해하고 피해자의 경험을 존중하는 인권감수성을 갖춰야 할 때이다. 재판부의 잘못된 판결은 오히려 성폭력을 조장한다는 준엄한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번 유명연예인의 성폭력을 고소한 분에 대한 무고죄 사건을 판단하게 될 재판부의 정의로운 판결을 기대하며 지켜볼 것이다. 더 이상 성폭력 혐의로 피고소된 사람이 기자들 앞에서 오히려 큰 목소리로 “무고는 큰 죄입니다”라고 외치는 장면이 재연돼서는 안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