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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속 정치이야기] 기장산하(氣壯山河)
뉴스천지  |  newscj@newscj.com
2017.03.16 16: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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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노신(盧迅)이 말한 ‘삼끈으로 허리를 묶고 고생한’ 도성장(陶成章, 1878~1912)은 신해혁명의 공로자였다. 15세에 이미 학숙의 선생 노릇을 했던 그는 일찍부터 역사와 신학문을 익혀 혁명가의 길을 갔다. 1902년, 군사학을 배우려고 일본으로 갔다가 반청혁명가로 변신했으며, 장태염(章太炎), 서석린(徐錫麟), 공보전(龔寶銓) 등과 함께 혁명단체를 결성하고 무장봉기를 획책했다. 이듬해 귀국하여 절강에서 각지의 혁명당과 연락책을 담당했다. 1904년 겨울, 채원배(蔡元培), 장태염 등과 상해에서 조직한 광복회를 중심으로 강소, 절강, 안휘, 강서, 복건 등지의 실질적인 지도자로 부상했다. 1906년에 다시 도일하여 동맹회에 참여했다. 나중에 남양 각지에서 혁명자금을 거두면서 혁명이념을 전파했다. 무창(武昌)기의 이후에는 광복군사령관으로 상해를 근거지로 절강, 남경 등을 수복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가난한 집에서 출생했던 도성장은 평생 소박하게 지내면서 공정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항주, 상해, 북경 등의 대도시는 물론 일본과 남양의 번화한 도시를 분주히 오가면서도 늘 허름한 옷을 입고 다녔다. 1901년 여름, 모처럼 항주를 찾아와 서호에서 피서를 즐겼다. 남병산(南屛山)의 백운암에 거처를 정한 그는 주지 득산(得山)과 그의 제자들에게 혁명이념을 가르쳤다. 백운암은 절강의 혁명당본부로 변했다. 이후로 도성장은 항주를 방문할 때마다 백운암을 유일한 거처로 삼았다. 1904년, 도성장은 4번째 항주를 찾았다. 항주와 소흥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곳이었지만 고향을 찾지 않았다. 연말이 되자 동행했던 위란(魏蘭)이 고향으로 가서 설을 보내라고 권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거절했다.

“다행히 늙은 아버님은 건강하시고 살림살이도 큰 걱정을 하지 않을 정도는 된다. 고향에 가면 인정에 끌려 다시 나오지 못할까 두렵다. 이미 나는 나라를 위해 분주하게 다녀야 할 사람으로 변했다. 내가 어찌 가족들에게 매일 수가 있겠는가?”

위란은 도선생을 모셨던 추억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옛날 대우(大禹)는 치수를 하면서 3번이나 집 앞을 지나갔지만 한 번도 들르지 않았다. 도선생은 4번이나 항주를 찾았지만 한 번도 고향을 찾지 않았다.”

당시 절동 각지에는 금화(金華)의 화룡회(華龍會), 처주(處州)의 쌍룡회(雙龍會), 평양(平陽)의 백포회(白布會), 구주(衢州)의 종남회(終南會), 승현(嵊縣)의 평양당(平陽黨) 등 여러 혁명조직이 있었다. 도성장은 늘 짚신과 삿갓 차림으로 산간벽지를 돌아다니며 혁명이념을 전파했다. 그의 활약으로 각지의 회당이 통일되면서 혁명사상으로 확산됐다. 일본에서의 생활도 어려웠다. 어느 겨울에 친구를 찾아갔더니 일본인 하녀가 거지취급을 했다. 친구가 웃으며 하녀에게 이렇게 해명했다.

“도 선생은 대단한 부자다. 매년 수천 만금이 선생의 손을 거치지만 한 푼도 사사로이 쓰지 않는다. 혁명을 위해 분주하여 자신의 옷가지 하나도 마련할 틈이 없을 뿐이다.”

1908년, 도성장은 단출한 옷차림으로 일본에서 싱가폴로 갔다. 중흥일보(中興日報)와 광화일보(光華日報)를 통해 발표한 글은 화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막대한 자금이 그의 손을 거쳐 갔지만, 그는 여전히 검소하게 살았다. 신해혁명이 성공하여 절강이 수복되자 항주로 돌아온 그는 북벌을 주장하다가 1012년 1월 14일 새벽 2시, 진기미(陳其美) 등에게 매수된 왕죽경(王竹卿)에게 암살당했다. 당시 나이는 35세에 불과했다. 시신은 항주로 돌아와 서호의 봉림사(鳳林寺) 앞에 매장됐다. 손문은 그의 사당에 ‘기장산하’라는 편액을 남겼다. 혁명은 뜨거운 희생이 뒷받침돼야 한다. 대통령의 탄핵으로 정국이 불안하다. 천박한 정치공학적 관점만 횡행하고 희생을 자처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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