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유승도

도랑물에 손과 얼굴을 씻고 일어나 어둠이 내리는 마을과 숲을 바라본다
끄억끄억 새소리가 어슴푸레한 가운데 함께 산촌을 덮는다
하늘의 하루가 내게 주어졌던 하루와 함께 저문다
내가 가야 할 저 숲도 저물고 있다. 사람의 마을을 품은 숲은 어제처럼 고요하다
풍요롭지도 외롭지도 않은 무심한 생이 흐르건만, 저무는 것이 나만이 아님은 문득 고맙다

 

[시평] 

하루가 저무는 시간, 어둠은 먼 곳에서부터 서서히 내려오듯이 그렇게 우리의 곁으로 다가온다. 먼 산과 마을과 숲이 먼저 어둠으로 젖어지기 시작을 한다. 그리고는 이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까지 어둠은 들이차고 만다. 

어둠이 내리는 시간, 끄억끄억 새소리가 어슴푸레한 가운데, 그 소리와 함께 어둠이 산촌을 덮는 그런 시간. 오늘이라는 하루도 이제 저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우리를 엄습하게 되면, 문득 쓸쓸해지기도 한다. 다만 하루가 아니라, 그 하루의 하루가 우리에게 주어졌던 그 하루와 함께 저문다는 생각을 하면, 우리의 무엇이 지금 저물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쓸쓸해지고 만다.

지금 우리가 가야 할 저 숲도 저물고, 또 사람들을 품은 고즈넉한 마을도 또한 저물어가고, 그래서 저무는 것이, 저물어 사라지는 것이 다만 우리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그래도 세상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풍요롭지도 외롭지도 않은 무심한 생, 그런 생을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모두가 함께 이렇듯 어둠에 젖어가며 함께 저물고 있는 그런 풍경을 대하고 있으면, 그래도 세상 혼자가 아니라는 작은 위안이 들기도 한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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