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점실명제가 시작된 지 보름째인 15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노점상의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실명제 도입 이후 보름째
영업시간, 점포배치에 불만
“장사 개시도 못한 날 허다”

[천지일보=김민아 기자] “노점실명제라는 거 결국 노점상을 없애려는 정책일 뿐입니다. 퇴출 당할까봐 울며 겨자 먹기로 정책에 따르고 있긴 하지만, 정말 먹고 살기 힘듭니다.”

노점실명제가 시행된 지 보름째 되는 15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을 찾았다. 이전에는 가지각색 다양한 모습과 크기의 노점들 여기저기에 설치돼 있었던 반면, 지금은 규격화된 노점이 남대문시장 길 가운데에 나란히 줄지어 서 있었다. 이동식노점수레에는 노점상인의 이름과 사진, 연락처 등이 기록된 등록증이 부착돼 있었다. 그러나 노점상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수면바지를 판매하고 있는 노점상인 임병원(68)씨는 노점실명제 이후 상황에 대해 “노점실명제에 반대하거나 요구사항을 말하면 구청 직원들이 ‘마음에 안 들면 나가라’는 식으로 하니까 배운 거 없고 돈 없는 우리 같은 사람은 이거라도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심정으로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며 “개시도 못하고 장사 접을 때가 허다한데 영업시간 제한에 세금까지 내야 하니 현상유지가 안 된다”고 울분을 토했다.

▲ 노점실명제가 시행된지 보름째인 15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에서 수면바지를 판매하고 있는 노점상인 임병원(68)씨가 골목을 바라보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남대문시장을 관할하는 서울 중구청은 지난 1일부터 남대문시장에서 노점실명제를 시행하고 있다. 노점실명제는 원칙적으로 불법인 노점에게 한시적 도로점용을 허가해 노점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법질서 테두리 안으로 흡수하는 제도다.

남대문시장 노점 영업 허용구간은 남대문시장 4길, 남대문시장 6길, 남대문시장길, 남대문로22, 삼익메사 부근 5개 구간이다. 실명제 참여 노점들은 2년간 도로점용허가를 받고 그에 따른 도로점용료를 부담해야 한다. 도로점용료는 개별공시지가와 점용면적, 법정요율 등에 따라 1년에 한 번 30만~50만원가량이 부과된다.

중구청 관계자는 “영업시간을 둘러싼 시장상인과 노점상인 간 갈등을 수습하고 노점실명제 수용을 통해 시장상인과 노점상인 간 상생의 길이 열린 것”이라고 평가했지만, 노점상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영업시간과 관련한 노점상들의 불만은 여전했다. 여성복을 팔고 있는 한모(65, 여)씨는 “오후 4시에 나와서 한 시간이 넘도록 개시조차 못했다”며 “오후 6시 30분이면 사람들이 빠지기 시작해 오후 8시가 되면 주변이 깜깜해진다. 오후 7시만 돼도 머리 빠진 것처럼 듬성듬성해진다. 여기(남대문시장 4길)서 저기(회현역 5번 출구)를 바라보면 차가 지나가는 게 다 보일 정도”라고 푸념했다. 이어 “오후 7시면 장사를 접어야 하는데 새벽부터 나와 눈을 까뒤집고 장사해도 먹고 살까 말까인데, 3시간 동안 장사해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겠느냐”며 “다음 달부터는 오후 5시부터 장사 시작인데 얼마나 여기서 장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점에 허용된 영업시간은 동절기(10월~3월) 평일은 오후 4시부터, 하절기(4월~9월)는 오후 5시부터다. 토요일과 공휴일은 동·하절기 구분 없이 오후 2시부터, 일요일은 오전 9시부터다. 종료시간은 오후 11시로 연중 동일하다.

노점상인들은 노점실명제와 함께 이뤄진 점포 재배치에 대해서도 불만을 제기했다. 옷을 파는 노점상 사이에서 핫바를 팔았던 김모(40대)씨는 “이전에는 하루에 20만원씩 팔았는데, 노점을 옮긴 이후에는 일주일에 1만~2만원 밖에 팔지 못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명동 같은 경우에는 먹거리와 상품이 적절하게 조합돼 있어 사람들이 쇼핑도 하고 군것질도 하고 그러는데, 여기는 쇼핑 따로 먹거리 따로 배치돼 있다”며 “쇼핑하다가 뭐 하나 사 먹으려면 500m 넘게 이동해야 하는데, 기자님 같으면 발걸음이 옮겨지겠느냐”고 반문했다.

노점 개시 3시간이 지난 오후 7시, 남대문시장에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먹거리 노점이 몰려 있는 길을 제외하고는 눈 깜짝할 새 짙은 어둠이 깔렸다. 씁쓸한 표정으로 하루 수익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남성복 노점상인 변모(58)씨와 허리띠 등 악세사리 노점상인 이모(62)씨는 담배를 한 대 태우더니 “정리하고 들어가자”며 노점수레를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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