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차렷!”

“수업 시간에 누가 움직이나? 앞을 보고 똑바로 앉아!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엎드려뻗쳐! 푸샵 10회 실시!”

이 소리들은 장교로 10년간 군복무를 하고, 22년 전 교단에 첫발을 디딘 필자의 교실에서 들려오던 소리다. 마치 신병 훈련소의 교관과 다를 바 없는 고성, 딱딱한 군대식 걸음, 칼 같이 다려 생명선까지 맞춰 입은 양복, 운동으로 검게 그을린 구릿빛 피부, 2:8 가르마 헤어스타일 등….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을 군에 몸담았던 터라 교사 초년병 시절엔 말투와 행동, 표정에서 군인의 틀을 벗어나질 못했다. 그러다 보니 필자에겐 ‘무서운 선생님’이란 수식어가 늘 따라 다녔고 아이들의 기피인물 1호가 됐다.

학교업무는 군인 출신이란 이력 탓에 늘 ‘생활지도부’였고 학교 내 악역을 도맡았다. 아무리 부드럽게 이야기를 해도 생활지도부 선생님이란 선입견 탓에 ‘엄한 선생님’이란 꼬리표를 떼기란 쉽지 않았다.

아침마다 아이들과 전쟁 아닌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머리가 길거나, 무스를 바르거나 염색을 한 학생들은 교문을 피해 담을 넘어 들어왔다. 필자의 하루는 그런 아이들을 잡아 군대식 얼차려를 주고 체벌을 가하면서 시작됐다. 아침마다 여기저기서 ‘퍽! 퍽!’거리며 체벌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생각 없이 군인과 다를 바 없는 교사 생활을 하던 중 수업시간에 “선생님 별명이 뭐야?”고 물었다.

“선생님 별명이요? 모세에요, 모세.”

“모세? 왜 선생님 별명이 모세야? 선생님이 무슨 기적이라도 일으켰냐?”

“아뇨, 그게 저…”

“괜찮아, 어떤 이유라도 다 이해할 테니 왜 별명이 모세인지 말해봐!”

“저, 실은요, 선생님이 복도에 나타나면 애들이 양쪽으로 갈라져 다 도망가서 모세라고 하는 거예요. 선생님한테 작은 트집이라도 잡히면 괜히 맞으니까요.”

‘헉!’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당황스러웠고 나의 교직생활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올바른 길로 가라고 엄하게 지도하고 체벌을 한다고 학생들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변해야 할 대상은 아이들이 아니라 바로 교사인 ‘나’ 자신이라는 것을 통감했다.

‘HOT’라는 가수가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던 시절, 수업 중에 “너희들에게 요즘 ‘핫’이라는 가수가 가장 인기가 높다며?”라고 아는 체를 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경험을 하고, 그 이유를 나중에 알고 나서 비로소 교사로서 변해야 할 방향을 찾게 됐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개콘(개그콘서트)과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를 꼭 챙겨보며 개그맨들의 유행어와 몸짓을 따라해 보고 연습했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방송되는 뮤직뱅크, 쇼 음악중심, 인기가요 등 가요프로그램의 아이돌 그룹의 노래와 춤을 들으며 소음이 아닌 음악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밴드동아리를 맡아 학원을 다니며 드럼 연습을 해서 학교 축제 때 밴드공연도 했다. 학생들과 야영도 하고 강촌으로 기차를 타고 가 자전거를 같이 타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10년 넘게 노력하니 어느 정도 아이들과 눈높이를 같이 할 수 있는 교사가 됐다.

작년 8월 교직을 떠나기 전 필자의 별명은 ‘드립신=애드립의 신’이 됐다. 간혹 책상에는 ‘선생님이 제일 좋아요’ ‘언제나 웃으세요’ 하는 편지와 캐릭터 그림이 놓여있기도 했다. ‘모세’에서 ‘드립신’으로 변해 좌충우돌 했던 지난 학교생활을 돌아보며 학생, 교사, 학부모, 학교의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보려 한다. ‘최선생의 교단일기’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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