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봉 대중문화평론가

2017년 이십세기폭스코리아의 차기작 ‘대립군’이 오는 6월 개봉을 확정지었다. 정윤철 감독의 영화 ‘대립군’은 임진왜란 당시 파천(播遷)한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왕세자로 책봉되어 분조(分朝)를 이끌게 된 광해와 생계를 위해 남의 군역을 대신 치르던 대립군(代立軍)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여기서 분조란 임진왜란 당시 임시로 세운 조정이다.

조선시대 왕 가운데 고종과 함께 무능한 왕으로 알려진 선조(宣祖, 1552~1608, 재위: 1567~1608). 그가 왕위에 있는 동안 임진왜란이 발발했고, 이후 조선사회는 무너져 내렸다. 최근에 와서 선조가 무능한 왕이 아니었다는 복권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기존의 부정적인 인식을 뒤집기에는 반론이 약하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고 두 무리로 나뉜 백성들이 혼동과 분란을 거듭하며 분열과 정쟁으로 치닫는 상황의 가장 큰 책임자는 왕일 것이다. 권력 장악은 했으나, 정치는 실패한 대한민국 현 시국을 돌아보게 하는 ‘파천(播遷)’과 ‘분조(分朝)’는 그 시대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영화 대립군의 포스터에는 “조선은 둘로 나뉘고, 왕은 나라를 버렸다”라는 메시지가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보수와 진보뿐만 아니라 정치에 무관심했던 일반 시민들도 가세해 현 시국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70년대부터 청와대와 권력의 뒤에서 단물을 빨아먹었던 최순실 일가를 믿고 의지했던 마인드와 잘못된 행동으로 헌정사상 가장 불행한 대통령이 됐다.

초등학생 때 청와대에 들어가 스스로를 공주로 생각하고 불통했던 권위주의적 행동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좀먹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이데올로기와 정치행위를 백성들에게 베푸는 것이라 여겼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기 전 사임연설을 통해 명예로운 퇴진을 했으면 어땠을까. 박 전 대통령은 닉슨보다도 더 국민에게 실망을 안기며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국민 혼란과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익을 위해 책임지고 조건 없이 사임한다는 발표를 했다면, 촛불을 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공감을 얻었을 것이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도 벼랑 끝까지 버텼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진 이후 은폐에 급급하고 특권을 내세워 방어한 부분은 박 전 대통령과 모습이 닮아있다. 하지만 닉슨은 최소한 국민에게 사임연설을 통해 “국익은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말로 잘못을 인정했다.

국정에 전념하는 풀타임 대통령과 풀타임 국회를 위해 사임한 닉슨을 닮았더라면, 국민은 약간의 아쉬움과 연민의 정으로 그를 바라봤을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삼성동 사저에 도착 직후, 박사모와 친박단체 및 지지자들과만 손인사를 나눈 후 국민과는 절교한 채 아무런 인사 없이 사라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결과를 안고 가겠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는 청와대 대변인을 통한 메시지를 통해 억울하고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는 식의 지지자를 향한 일방적인 목소리만을 냈다.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국론 분열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의 시작점은 통합과 잘못에 대한 인정이다. 기득권 세력과 정치인들을 포함한 사회적 리더들의 철저한 자기고백과 반성 없는 개혁은 사회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철저한 자기반성 결여와 국민에 대한 호응을 무시하는 박 전 대통령은 앞으로 혹독한 검찰조사가 남아있다. 닉슨이 정치와 연계된 사회분야에 실해를 끼치지 않은 것과 달리, 박 전 대통령은 대기업, 미르 및 K스포츠재단 등 낡고 부패한 적지 않은 비리에 공범으로 몰리며 넘어야 할 산이 높기만 하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박 전 대통령은 40여년간 엮여온 최태민·최순실 일가의 어두운 관계를 청산하고 국민에게 진실된 사과와 함께 화합을 촉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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