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과거 유교국 조선이 망한 것은 당쟁(黨爭) 때문이었을까. 국가의 운명을 나락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렸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치열했던 시기에는 백성들의 삶이 보다 편했다는 이론도 있다. 서로 상대 당을 의식, 임금에게 신임을 얻고 민심을 얻기 위해서 머리를 싸맸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쟁의 폐해는 태산 같았다.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스승과 결별하고 친구나 학우의 의리마저 팽개쳤다. 반역의 기치를 들다 삼족이 멸문 당하는 화를 입기도 했다.

조선 숙종대 노·소론 간 분쟁 ‘회니시비(懷尼是非)’는 당쟁의 산물이었다.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과 소론의 정신적 지주였던 제자 윤증과의 싸움을 가리킨다. 두 사람은 윤증의 부친 행장문제로 틀어져 결국 원수처럼 증오하는 사이가 됐다. 우암은 대전 회덕(懷德) 송촌에, 윤증은 논산 이성(尼城)에 살았으므로 사가들이 이를 ‘회니시비’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사제 간의 분쟁은 사사로운 집안일로 시작됐지만, 극단적인 처사로 발전한 것은 사상 때문이었다. 스승은 주자(朱子)를 최고 덕목으로 삼은 것에 반해, 제자는 보다 급진적인 사상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우암을 영수로 하는 노론은 주자(朱子)를 맹종하지 않는 무리를 지칭하여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매도했다. 스승은 실학적인 양명학을 수용했던 제자를 탐탁하게 생각할 리 없었던 것이다. 결국 소론의 탄핵을 받은 우암은 실각돼 귀양을 가게 됐다. 이 시기 정권은 세 번이나 엎치락뒤치락 뒤바뀌고 우암은 82세의 노구에 사약을 받아 유명을 달리했다. 당시 노 대신에게 사약이라는 극형은 내리지 않는 것이 상례였는데 숙종은 우암이 ‘죄인의 수괴’라는 죄목을 씌워 죽게 했다. 경국대전 어디에도 없는 괘씸죄 죄목이었다.

숙종이 노 대신을 특별히 미워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암은 임금이 총애했던 장희빈의 아들이 세자가 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우암이 전라도 정읍에서 사약을 받은 상황을 나량좌라는 소론 선비가 ‘명촌잡록(明村雜錄)’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정읍에서 사약을 받던 날 도사 권처경 앞에 꿇어앉아 말하기를, ‘이것은 양전(효종과 명성왕후)의 어찰인데 감히 우러러 바칩니다’라고 하였다. 권처경이 ‘나는 사사(賜死)하라는 명만 받았으니 어찌 갖다 드리겠소’라고 거부하고 서리에게 그 편지를 빼앗게 하여 그 자손에게 주었다. 송시열은 다리를 뻗고 바로 드러누었다. 도사 권처경이 재촉했으나 마시지 않으므로 약을 든 사람이 손으로 입을 벌리고 약을 부었는데 한 그릇 반이 지나지 못해 죽었다.(하략)…”

우암의 죽음은 전국 사류들을 충격과 비탄에 빠뜨렸다. 5년 후 장희빈의 폐출과 더불어 우암의 억울함이 풀리자 반대로 모함을 주도했던 상대 당 대신들이 줄줄이 화를 당했다. 이 때 붕당의 폐해를 없애자고 등장한 것이 바로 ‘탕평론(蕩平論)’이다. 숙종실록에 이세최라는 관리가 ‘붕당의 폐해를 불식시켜야 합니다’고 상소했는데 숙종도 ‘깊이 생각하겠다’고 답했다는 기록이 있다.

탕평은 영·정조 시기 적극 수용됐으나 골 깊은 대립은 불식되지 않았다. 반대당이 집권하면 다른 당 선비들은 과거시험 합격을 거부하기도 했다. 상대 당을 인정하지 않는 편협된 사고로 일관했다. 붕당세력은 외세가 조선 침공을 해와도 대응하지 못하고, 탐관과 집권욕에 빠져 결국 나라를 일제에 넘겨주고 말았다.

한국의 현 정치 상황은 조선 숙종시기 사색당파의 악순환을 떠올리게 한다. 각 정당 간 혐오와 비난은 증오의 수준이다. 정치지도자들이란 사람들이 상대 당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없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헌재의 탄핵용인 판결을 받고 물러났다. 그러나 탄핵 판결을 수용하지 않는 저항이 심각하다. 분노한 태극기 집회에서 시위대가 여러 명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더 이상의 소요와 혼란은 바람직하지 않다.

앞으로 50일이면 대선이 치러지고 새 정부가 탄생한다. 새 대통령은 붕당의 반목을 씻고 화해와 탕평으로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해야 한다. 국민 각자도 자신의 주장보다는 우선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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