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사마천은 사기(史記)에 화식(貨殖)열전을 쓰게 된 이유를 “아무 계급과 관직도 없으면서 정치를 문란케 한다든가 백성을 괴롭히는 일 없이 정당한 거래를 하여 재산을 모은 자가 있다. 그래서 기록하게 되었다”라고 했다. 그가 사기에 화식열전을 기록한 것은 그 시대에도 사회 체제를 이끌어 가는 데는 경제의 역할을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사기에는 인간정신의 존엄성을 상당부분 할애하고 있으나 사마천은 물질을 의식으로부터 독립한 객관적 존재라고 벌써 기원 전 2세기에 유물론을 기록했다. 일찍이 고전적 역사 기록이면서 독창적으로 경제에 대해 언급한 것은 사기 외에는 없었다.

사마천의 시대와 현재의 경제 체제는 전혀 다르지만 그 무렵에 그는 인간의 모든 활동의 기본을 이미 경제로 지목하고 있었다. 사마천은 공자가 열국을 떠돌면서 유세를 하고 그의 학문과 사상을 펼칠 수 있게 뒷받침 하게 된 것은 제자들의 경제적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 했었다고 했다. 자공(子貢)은 공자 밑에서 수학한 뒤 위나라를 섬겼고, 그는 이재에 뛰어나 조나라와 노라에서 물건을 사고팔며 수천금의 재물을 모았다. 공자의 제자 중에 자공이 월등히 부유하여 그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다니며 비단으로 제후, 재상들과 교제를 나누었다. 공자의 명성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도 자공이 재물로 음과 양으로 도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했다.

“부자가 되면 될수록 덕망도 높아진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날그날 살아가기에도 부족한 사람에게 덕망이나 예의를 말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생활에 여유가 생기게 되면 도덕의식은 저절로 높아진다”라고 말한 인물은 전국시대 제나라의 재상인 관중이었다. 도덕이란 생활의 여유가 있는데서 생기는 것이다. 군자가 부(富)하게 되면 덕을 행하려 하며, 소인도 부하게 되면 소인대로 자기의 생활 방법을 돌이켜 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부유해야만 인의(仁義)의 마음을 품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부하면 부할수록 처신에 따라 덕망도 높아지겠지만 일단 부를 잃게 되면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실의에 빠지고 만다. “부호의 자식은 거리에서 처형되는 일이 없다”라고 한 속담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이(利)를 위해서는 모두가 웃으며 모여들지만 이가 사라지면 제각기 흩어지고 만다”란 노래도 있지 않은가. 왕후 대부까지도 가난을 두려워하는데 하물며 서민이야 태평하게 그냥 있을 수가 있겠는가.

사마천은 인간의 마지막 목표를 부(富)라고 했다. 현명한 사람들이 묘당에서 계략을 꾸미고, 조정에서는 논의를 거듭하며 목숨을 걸고 절의를 지키는 것도 최종 목표는 부를 위한 것이 아닌가. 청렴한 관리도 오랜 세월을 지내면 재산이 모여지게 된다. 상인들처럼 재산을 모으는 것은 인간의 본능으로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이 욕망에 따라 행동한다. 각 나라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거리의 무뢰한들이 저지르는 각종 범죄와 선남선녀들이 화장을 짙게 하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아양을 떠는 것도 모두가 부귀를 위한 마음에서다. 의술이나 법관, 그 밖의 여러 기능으로 입신출세를 위해 고심참담 전력투구 하는 것도 막대한 보수를 위해서이다. 관리가 극형에 처해질 것을 알면서도 법을 어기고 범법 행위를 하는 것도 뇌물의 유혹에 빠지기 때문이다. 부를 위해서 인간은 지혜와 기능만이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하는 것이 상식이며 여력(餘力)을 가지고 남을 돕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마천은 모든 재물은 그때그때 생활 유지에 쓸 수 있는 방편에 불과하므로 사회나 이웃과 더불어 살기 위해 백년대계를 세우는 것은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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