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고대 로마의 종신 집정관이며 장군이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로의 진격을 위해 건넌 강이 이탈리아 북부의 루비콘(Rubicon) 강이다. 그는 이미 로마로의 진격을 결심하고 루비콘 강에 이르렀다. 그 강 앞에서 그는 다시 한 번 결의를 가다듬는다. 그에 앞서 로마의 원로원은 그에게 군대를 인솔하지 말고 무장해제 상태로 원로원에 출두할 것을 통지했었다. 기실 어떤 장군이라도 로마에 들어올 때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 로마법의 요구였다. 물론 카이사르에게는 그 법을 자연스럽게 이용해 그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에서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카이사르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이 곤경을 맞아 카이사르가 선택한 것은 로마로의 진격이었다. 군사정변, 바로 오늘날의 쿠데타를 위해서다. 

그렇지만 그것이 성공하기 이전의 행위인 군대를 인솔하고 루비콘 강을 건너는 것은 곧 반란이며 반역이다. 더구나 루비콘 강을 일단 건너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싸움이 있을 뿐 그 반역을 거두어들일 수가 없다. 이래서 루비콘 강을 앞에 둔 카이사르는 새삼 비장한 표정으로 결의를 다시 다지게 된다. 드디어 잠시 뒤 ‘주사위는 던져졌다’며 되돌아오지 못할 루비콘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카이사르가 이렇게 되돌아오지 못할 루비콘 강을 결연히 건넜듯이 우리 땅에 전격적으로 반입된 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THAAD) 역시 되물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일각에서 ‘사드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말한다. 그럴 듯하다. 그렇게 우리를 겨눈 ‘창(spear)’과 같은 북한의 핵과 핵미사일에 대한 ‘방패(shield)’인 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은 미군의 대형 수송기에 실려 태평양을 건너왔다. 

그동안 그것의 배치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져 국론의 혼란이 너무 길었다. 그렇지만 북의 도발에 강경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단호함이 명쾌하게 반영됨과 동시에 한미 동맹의 결연한 안보 조치로서 사드의 반입은 이루어졌다. 북한은 평안북도의 어느 논바닥에서 탄도미사일 ‘북극성2’ 4발을 동해바다로 쏘아 1000킬로미터를 날려 보냈다. 그 미사일들은 동해바다 일본의 EEZ(배타적 경제수역)에 떨어졌다. 아니 그곳에 일부러 떨어뜨렸다. 그것이 의도적인 것임은 그들 스스로가 그날의 미사일 도발이 주일 미군 기지를 타격하기 위한 훈련이었음을 감히 밝힌 데서 명확해진다. 그들은 그날 훈련이 그들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이 직접 참관해 발사 명령을 내림으로써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아울러 자세히 공개하기도 했다. 이는 북에 가해진 UN안보리의 제재를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대한 도발이며 특히 한국 미국 일본에 대해서는 소름 끼치는 직접적 위협이 된다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더구나 그들이 고정 기지나 평탄한 도로가 아닌 논바닥에서 미사일을 쏜 것은 그들의 미사일 기술이 빠르게 교묘해지고 발전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연료는 주입(注入)에 상당 시간이 걸려 탐지되기 쉬운 액체연료가 아니라 고체연료였으며 발사대는 험한 도로나 논밭 어디든 갈 수 있는 이동식 괘도 장착 차량이었다. 이래서 당연하지만 북의 미사일 도발이 낳은 후폭풍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심각했으며 방어조치가 급박하다는 신호를 던져주었다. 

항상 그랬듯이 도발 후에 뒷북을 치긴 했지만 직접적인 위협 대상이 된 한·미·일 3국 정상들과 안보 책임자들이 긴박하게 소통하고 숙의를 나누며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후과(後果)의 크기를 실감나게 해준 것은 유엔 안보리에 긴급회의가 요청된 의례적 순서가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들까지 이례적으로 준엄하게 북의 핵실험을 비난하며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거기다 한국의 사드 배치에 토라져 터무니없이 반발하는 중국까지도 생뚱맞은 체면치레용 짧은 ‘도발 반대’ 성명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태의 심각성을 극적으로 웅변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구사한 언어적 수사(修辭)다. 그의 표현 기법은 물인지 술인지 모를 전임 오바마 대통령과는 너무나 다르다. 그는 말하기를 북의 도발에 ‘아주 무서운 후과(very dire consequences)’가 따를 것이라고 했다. 감정을 숨기지 않는 직선적인 경고다. 그가 얼마 전 북한의 도발에 ‘몹시 화가 나 있다’고 했었지만 그 말보다 훨씬 더 수위가 높아졌다. 그렇다면 북에 대한 미국의 ‘인내심’이 거의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이 가능하다. 그만큼 북에 대한 군사적 타격까지를 포함한 모든 옵션이 검토되는 아주 엄중한 상황에 우리는 처해 있는 것이 아닌가. 특히나 북은 지금의 사태를 직시해야 한다. 그들을 감싸고도는 중국 역시 한반도의 불안이 한미동맹의 강경한 반응에 의해서가 아니라 항상 그것을 유발하는 북의 원인제공에 의해서라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북과 우리를 놓고 당겼다 놓았다 꼭두각시놀음을 즐기려 하지 말아야 한다.

어떻든 이런 엄중한 상황의 흐름을 타고 ‘사드’는 전격적이고도 자연스럽게 한국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북극성2’가 발사된 다음날, 트럼프의 무시무시한 경고가 나온 직후에 취해진 조치다. 무슨 일에서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일사 분란한 논리가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안보 문제는 사변적이거나 이념적이며 추상적인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즉시즉응의 대책이 필요한 현실적이며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문제다. 따라서 아무리 민주주의 국가일지라도 생존이 걸린 안보 이슈에 대해 국민의 여론을 장기간 혼란 상태에 방치해 갑론을박으로 세월을 낭비하게 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안보 문제는 제(諸)정파들의 정략의 대상일 수 없으며 찬성이 절대다수가 되거나 반대가 절대 소수가 될 때까지 결정을 무한정 지연시켜도 되는 그런 범사(凡事)가 아니다. 그럼에도 북한의 핵과 그것의 운반수단이 날로 고도화돼가는 절박한 처지에서도 우리는 사드 배치에 관한 국론의 혼란을 너무 오래 방치했다. 이제는 갑론을박의 혼란을 끝내고 단호한 안보 결의를 지향해 국론을 수렴해가야 할 때가 된 것이 자명하다. 사드 문제에 대한 중국의 간섭과 심통, 보복은 단호히 배격해 주권국가의 존엄을 세워야 한다. 그들의 비이성적이고 ‘더티(dirty)’한 행위는 길게 보아 그들에게도 이익 될 것이 없다. 뿐만 아니라 안보 주권 문제에 그런 것이 결코 통하지 않는다는 엄중한 경고와 교훈을 그들에게 뼈 아프게 남겨줄 때도 바로 이 비상한 시국을 통해서라는 것에 대해 더 길게 설명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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