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지난달 19일 관악산 등산로에서 60대 노인이 목매 자살했다. 지난 2월 1일엔 서울시 영등포구 한 다세대 건물 지하에 살던 40대 남성이 자살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 두 분이 극단적인 결정을 한 것은 밀린 월세 때문이다. 월세가 밀린 사람들의 마음은 하루하루 아니 일분일초가 조마조마하다. 앞이 캄캄하고 속이 검게 타들어간다. 인기척만 있어도 임대료 독촉하러 오는 발걸음 아닌가 하고 가슴이 콩닥콩닥한다. 더 큰 문제는 해결책이 안 보인다는 거다.

관악산에서 자살을 한 노인은 일용직이었는데 다리를 다쳐 일을 못해서 넉 달 동안 월세가 밀렸다. 자녀와 20년간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월세를 계속 못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방에 있는 짐은 다 버려주세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영등포구 지하방에서 목숨을 끊은 사람은 5개월치 월세가 밀려 퇴거를 요구받았고 집 비워주기로 한 날 자살을 했다.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겼다. 생활고와 병마에 시달렸던 세 모녀의 경우처럼 이 두 분도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연이은 두 번의 자살 사건은 한국 주거복지의 참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준다. 경제 선진국이라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참상이다. 고인이 된 관악구 어르신과 영등포구에 살던 분에게 한없이 죄송하다. 

관악산 노인 자살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쪽방’ 문제다. 4제곱 미터짜리 방은 말이 방이지 방이 아니다. 혼자 돌아눕기도 힘들고 취사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겨울 내내 냉기가 쉬 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전기담요에 의존했거나 전기담요마저 켜지 못하고 이불로 감싸고 추운 겨울을 견뎌냈을 수도 있다. 내가 가 본 독거노인과 빈민층 가구는 도시가스가 있어도 쓰지를 못하고 한 달에 30만원 이상 나오는 기름보일러는 아예 땔 생각도 못했다. 전기장판 하나로 살거나 그마저도 혹한기에만 사용하는 가구가 여럿 있었다. 관악산에서 목숨을 끊은 할아버지도 한 평 남짓한 방에서 한기와 싸우며 겨울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막노동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젊은 사람도 일구하기 힘 드는 상황이다. 겨울철은 일이 더욱 없다. 몸까지 다쳤으니 심정이 오죽했을까. 얼마나 돈이 절박했으면 “돈을 벌어야 한다”고 혼자 소리를 질렀겠는가. 

자살한 두 분 다 국가기관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문을 연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가 얼마나 힘이 되고 있는지 냉철한 점검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 주민센터 방문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방문해봤자 소용없더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신청주의’로는 더 이상 참사를 막을 수 없다. 빈곤가구 실태를 파악해서 지원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담당 공무원이 속속들이 빈곤실태를 파악하고 ‘맞춤 대책’을 펼칠 수 있도록 재량권을 부여하고 관련 예산도 확보해야 한다.   

국민이 ‘집’ 문제로 목숨을 끊었으면 국가기관에 비상이 걸려야 정상이다. 그런데 목숨을 끊는 뉴스가 연달아 터져도 국가도 정치권도 국회도 잠잠하다. 어느 가족 가운데 누군가 생활고로 자살 직전에 내몰린다고 가정해 보자. 그 때 가족들이 나 몰라라 한다면 이게 정상적인 가정인가? 

아프리카 어느 부족 이야기다. 아픈 사람이 생겼다. 온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치료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TV에서 본 적 있다. 마을에 사는 한 사람은 ‘어떻게 마을 사람이 아픈데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 대목에서 스웨덴 이야기 잠깐 해보자. 스웨덴의 사회민주당 한손 총리는 1928년 의회연설에서 국가는 ‘국민의 집’이어야 한다는 연설을 한다. 길지만 일부를 인용해 본다. 

“가정의 기본은 공동체와 동고동락에 있다. 훌륭한 집에서는 누구든 특권 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독식하는 사람도 없고 천대받는 아이도 없다. 다른 형제를 얕보지 않으며 그를 밟고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 약한 형제를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이런 좋은 집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동등하고, 서로 배려하며, 협력 속에서 함께 일한다.” 

스웨덴은 ‘국민의 집’ 사상에 따라 빈부격차, 불평등, 불공정과 착취, 주거불평등을 극복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이 지배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딱 들어맞는 처방 아닌가? 한국사회가 한손 총리가 말한 ‘국민의 집’을 닮은 국가라면 어떻게 집세를 못 내서 자살로 내몰리는 국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주거권 보장과 보편적인 주거복지를 통해 주거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밀린 임대료 때문에 자살을 결심하는 사람이 더 이상 생기지 않는 사회가 되도록 국회와 정부, 지자체가 앞장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시민의 목소리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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