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 묻은 요셉의 옷을 받은 야곱, 벨라스케스, 223*250㎝, 1630년.

임준택 관광영어통역안내사/목사 

 

바로크시대 스페인의 대표적인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 피카소, 달리, 고야가 닮고 싶어 했던 내면 심리표현의 대가 벨라스케스. 피카소는 벨라스케스의 작품 ‘시녀들’이란 작품을 프라도미술관에서 15세 때 본 이후 말년 때까지 50여회 모작을 그렸다고 하니 벨라스케스가 당대와 후대의 화가들에게 얼마나 큰 사람이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럼 다시 성경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요셉의 11명의 형들은 요셉의 꿈을 싫어했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요셉은 당시에 왕따였다. 형들의 증오심은 그 동생이 꿈을 이루어 가는지 두고 보자는 식으로 요셉을 죽이려고 했고,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넘기게 된다. 이제는 집에 가서 뭐라고 해야 할지 말을 꾸며야 한다. 살인이라는 것, 거짓말하는 것, 미워하는 것 등은 마귀의 속성이다. 요 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하는 것처럼 형제들은 마귀의 일을 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를 만나는데 무엇이라고 변명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서로 알리바이를 맞추고 이제 만반의 준비를 한 후에 아버지에게 와서 거짓자백을 하게 된다. 

①손에는 짐승의 피 묻은 동생의 채색 옷을 들고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한 얼굴로 꾸미고 아버지 앞에 섰다. ②아버지는 자기의 가장 사랑하는 독자와도 같은 아들 요셉이 짐승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자신이 의지하고 있는 지팡이를 내동댕이쳤다. 늙은 자신을 지탱해 주는 지팡이가 자신이 사랑하고 의지했던 아들이 아니었을까? 그 아들을 빼앗겨버린 야곱의 온 마음과 시선은 그 옷에 집중이 돼있다. 옷을 들고 있는 두 형제는 연기를 해 보이고 있지만, ③야곱 바로 앞에 있는 한 형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턱을 괴고 갸우뚱하고 있고 그 뒤에 있는 형제는 옷을 들고 거짓을 지어내고 있는 형제들을 보면서 자기는 주동자가 아니라는 표정으로 멀찍이 곁눈질하면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④그러나 충성을 상징하는 개는 형들이 거짓말하고 있다고 열심히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그 피가 사람의 피가 아니라 수염소의 피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형들은 요셉을 팔아 돈을 벌었고 아버지 야곱은 비탄에 잠겨있지만 그런 상황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언약을 성실히 이루어 이루어가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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