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23아이덴티티’ 스틸 (제공: UPI코리아)

1977년 美 실제사건 모티브
제임스 맥어보이의 미친 연기
목소리부터 얼굴 주름까지
섬세한 연기로 여러 인격 소화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많아도 너무 많다. 가수 조성모의 노래처럼 ‘23 아이덴티티(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주인공 ‘케빈(제임스 맥어보이 분)’ 안에 23개나 되는 인격이 들어 있다. 지난 2015년 방영된 드라마 ‘킬미, 힐미’에 나온 7개의 다중인격을 가진 주인공보다 더 했다. 인격이 많은 만큼 더 위험하고, 더 스릴 있다.

영화 ‘23 아이덴티티’는 23개의 다중인격을 지닌 남자 ‘케빈’이 지금까지 나타난 적 없는 24번째 인격의 지시로 소녀들을 납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심리 스릴러다.

친구 생일파티에 참석한 ‘케이시(안야 테일러 조이 분)’는 친구 2명과 함께 친구의 아버지 차를 타고 귀가한다. 트렁크에 짐을 넣는 친구 아버지를 차안에서 기다린 케이시와 친구들은 운전석에 낯선 남자 ‘케빈’이 앉은 것을 보고 기겁한다. 케빈은 3명의 소녀에게 수면 스프레이를 뿌려 기절시키고 지하 밀실에 가둔다.

시간이 지난 후 잠에서 깬 소녀들은 케빈과 마주하고 다른 인격인 ‘패트리샤’ ‘헤드윅’을 만난다. 그리고 자신이 만난 케빈이 케빈 자신이 아닌 ‘데니스’라는 것을 깨닫고 혼란스러워 한다. 이들은 밀실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다. 케이시는 다른 인격을 이용해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 소녀들은 23명이자 한명인 케빈을 피해 무사히 밀실에서 빠져 나갈 수 있을까.

▲ 영화 ‘23아이덴티티’ 스틸 (제공: UPI코리아)

지난 1월 20일 북미에서 개봉한 ‘23 아이덴티티’ 덕에 미국 극장가가 들썩였다. 개봉하자마자 압도적인 수치로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스토리텔링의 대가라고 불리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기 때문이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전 세계를 혼란의 도가니에 빠지게 한 ‘식스 센스(1999)’를 통해 단번에 할리우드 차세대 유망주 감독으로 입성했다. 좋은 평이 독이 됐을까.

이후 ‘언브레이커블’ ‘싸인’ 등을 차례로 내놨지만 너무 반전에 집착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제임스 맥어보이를 만난 그는 영화를 통해 “내가 바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다”라고 크게 외치는 것 같다. 반전만을 추구하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이번 작품에선 깔끔하게 반전을 제외했다.

사실 내용은 별거 없다. 23개의 인격을 가진 환자가 3명의 10대 소녀를 납치해 그들을 불순하다고 정의하고 자신 나름대로의 심판을 내린다. 23개의 인격들은 24번째 인격인 ‘비스트(Beast)’를 언급하며 무서워한다.

그러나 제임스 맥어보이가 있었다. 나쁜 남자의 매력을 보여준 ‘비커밍 제인’부터 ‘원티드’ ‘엑스맨’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훈훈한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은 팬들로 기대감을 갖게 했다.

이번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미쳤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23개의 다중인격을 가진 ‘케빈’ 역을 맡았다. 순식간에 갈아입는 의상부터 목소리 톤, 얼굴의 미세한 움직임과 주름, 섬세한 손끝까지 여러 인격을 연기하는 제임스 맥어보이를 보고 있으면 러닝타임 내내 감탄사를 자아낼 것이다. 그가 이렇게까지 연기를 잘했나 싶을 정도다.

▲ 영화 ‘23아이덴티티’ 스틸 (제공: UPI코리아)

9세 소년 ‘헤드윅’을 연기할 땐 혀짤배기소리로 연령을 표현했으며, 감정 기복이 없고 강박증이 심한 ‘데니스’로 분했을 땐 중저음의 분명하고 정확한 발음을 구사했다.

이러면 안 되지만 새로운 인격이 스크린에 등장할수록 다음엔 어떤 인격을 연기할 지 기대감마저 든다. 어느새 관객은 케빈 안에 있는 23개의 인격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에선 8개의 인격만 보여준다. 23개의 인격을 다 보여주지 않아서 아쉬웠다.

샤말란 감독은 제임스 맥어보이에게 의도적으로 자세한 설명 없이 각본만 전달했다. 그가 말하는 케빈에 대해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 결과 무궁무진한 애드리브를 볼 수 있었던 것. 샤말란 감독은 “9세 소년 헤드윅을 연기할 땐 실제로 키가 3인치는 줄어든 듯 보였고, 데니스를 연기할 땐 몸도 더 단단해진 것처럼 보였다”고 극찬했다.

이 영화는 1977년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발생한 ‘빌리 밀리건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됐다. 강간·납치 등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빌리 밀리건은 세계 최초로 24개 인격이 존재한다는 정신감정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은 바 있다. 샤말란 감독은 뉴욕 대학 재학 시절 해리성 정체감 장애에 대한 수업을 듣게 된 후 오랫동안 관심 있게 지켜봐왔고, ‘23 아이덴티티’가 그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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