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926년 ‘개벽’지에 실린 자유시다. 나라 잃은 비극적 현실과 다시 찾아온 봄의 아름다움을 대비해 일제 강점하의 우리 민족의 설움을 강렬한 어조로 쏟아낸 저항시다. 시인은 ‘빼앗긴 들’이라는 현실과 ‘봄’이라는 희망 즉, 조국광복을 상반되게 나열하면서 조국광복이라는 희망 대신 절망에 무게를 실었다. 하지만 그 절망은 희망을 향한 처절한 절규였다.

봄의 문턱에서 90년 전 이상화 시인의 감정으로 이입되고 싶은 심정은 왜일까. 해방 후 찾아온 분단의 현실, 허리가 잘린 이 나라는 다시 갈기갈기 찢어지고 원치 않는 사상에 굴복당한 채 여기까지 달려 왔으며, 지금은 그 절정에 이르렀으니 과연 봄은 오는가. 나라를 잃은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생각과 정신과 의식의 속박이다.

정국(政局)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인용과 기각이라는 격랑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은 또다시 국민들을 두 가지 국민으로 여지없이 갈라 줄 세우고 있으며, 매주 토요일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선동한다. 그것이 지도자이고 정치고 종교고 언론이라며 분위기를 극대화 시키고 있다. 국민들은 거짓의 논리와 야릇한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고무돼 가고 있으며, 때론 지쳐가고 있다. 생업과 학업을 포기하고라도 그것이 애국인 줄 알고 거리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내가 줄 서 있는 쪽이 정의며 진실이며 진리인 양 상대를 무차별 공격한다. 극한 대립은 세계 정세추이도, 한반도 주변 상황도, 국방도, 경제도, 교육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직 내 편만이 진실이고 정의다.

알고 보면 극한 대립의 이면에는 진보와 보수라는 허무맹랑한 논리가 포장하고 있으며, 국민들은 그 포장 속에 갇혀 있고 볼모로 잡혀 있으니 이보다 더 무서운 속박은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참된 국민들은 어처구니없는 가치관에 매여 나라의 등불이 꺼져가는 이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섭리 가운데 다가온 봄을 그저 바라만 볼 뿐 기쁘게 맞이할 수 없다. 봄은 생명이며 희망이건만 우리가 처한 현실의 봄은 캄캄한 생지옥이나 다름없다. 어둠이 물러나기 전 마지막 몸부림이며 진통이었으면 그나마 다행이리라.

‘보수(保守)’란 뭔가. 현 국가 체제와 헌법질서를 인정하고 지키고 유지해가는 가운데서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지속적인 발전과 성장을 꾀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진보(進步)는 무엇인가. 현 체제나 헌법의 부정적 요소를 고치고 개혁해 감으로써 변화된 세상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두 가지의 가치관은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어찌 보면 하나의 주장이지 정답은 아니다. 그러하기에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안정’과 ‘변화’는 양날의 칼이기 때문이다. 다만 시대와 상황과 여건에 따라 어느 쪽이든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일 뿐이다. 상대를 전면 부정하고 적대시하는 극단적 사고와 논리가 사라져야 하는 절대적 이유이며, 유교의 중용이나 불교의 중도가 출현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진보와 보수라는 혼돈 속에서 우리가 찾아 교훈 삼아야 할 가치관은 바로 중도(中道)다. 이 중도는 뭔가. 우리는 옛부터 오른손을 ‘바른 손(옳은 손)’이라 불러 왔다. 또 좌측을 기준으로 삼던 문화가 잘못된 줄 알고 얼마 전부터 국가 차원에서도 ‘우측 보행’을 규정화했다. 이는 ‘우’가 갖는 상징적 의미는 ‘옳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우(愚)를 범해선 안된다. 우는 좌가 있기에 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시 말해 우는 좌를 품을 수 있을 때 진정한 우가 될 수 있으며, 우는 우파도 보수도 아닌 옳은 선택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라는 틀 속에 갇혀 있는 포로가 되지 말고 옳고 바른 길을 가야 할 때다. 중도는 곧 진정한 보수이기 때문이다. 우든 좌든 누구의 말이고 주장이고 논리이든 간에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내 편이면 틀려도 맞는 것이 되고, 내 편이 아니면 맞아도 틀린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중도는 곧 진리며 진실이며 정의다. 정의가 살아 숨 쉬는 나라, 진리와 진실이 지배하는 나라, 우리 모두 함께 만들어 가야 할 때가 도래했음을 이 혼탁한 세상은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그랬을 때 허무한 데 굴복당하며 빼앗겼던 우리의 생각과 의식과 가치관은 그야말로 진정한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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