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탄핵정국은 국정공백과 국론분열 우려를 낳으며 국민불안감을 씻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반도 안보·경제 상황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미국의 대북선제타격론, 한반도 전술핵재배치검토설 등에 자극받은 듯 북한이 6일 또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군사적 야심을 노골화하고 있다. 첫 사드 장비가 헌재결정선고일 직전 논란 속에 한반도에 도착했다. 관광취소를 비롯한 중국의 사드경제보복에다 미국의 금리인상가능성까지 겹쳐 한국 경제에는 잔뜩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극단적인 자국우선주의를 기치로 내건 열강의 틈바구니 속이다. 대한민국호(號),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위기인가, 기회인가. 탄핵정국 이후 예상되는 국가적 혼란 상황에서 한민족 특유의 지혜와 기개, 대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줄 리더는 존재하는가. 그는 누구인가.

사드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대응이 미숙했다. 외교태풍에 속수무책인 사드외교가 문제였다. 사실 북핵에는 핵무장이나 전술핵재배치가 더 효과적이다. 사드는 주로 미·일방공을 위한 것이지 휴전선 코앞인 서울에 대한 방어용도 아니다. 하지만 북한 핵과 미사일을 감안할 때 (모든 첨단무기가 다 그렇지만) 사드도 없는 것보다는 분명 있는 게 낫다. 지금은 어떤가. 사드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오히려 못한 듯한 파국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혜롭지 못한 외교정책 때문이었다. 당초 정부가 사드를 미군에 배치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면 그냥 아무 소리 없이 배치했어야 했다. 정치권이 너도나도 찬반 목소리로 나서고 온 세상이 떠들썩하게 다룰 일이 아니었다. 또한 국방부는 사드 배치가 한국의 MD체계 가입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어쩐지 국방부가 미덥지 못하다. 청와대에 이른바 외교 컨트롤타워는 있는가. 국방·안보 논리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도 외교를, 경제를 다 외면해서는 안 된다. 비유하자면 혹시 우리 국민 모두가 365일 생업을 포기하고 군복 입고 훈련만 하는 전시상태로 있게 한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이듯 말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이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고 했다. 사드에 관한 중국의 속내를 좀 살펴보자. 중국은 자기네 땅도 아닌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하는 데 대해 왜 그리 예민한가. 북핵과 미사일 발사는 막지 못하면서 왜 내정간섭에 혈안인가. 첫째, 중국은 사드배치를 한국의 미국 MD체계 편입으로 본다. 그간 한국은 미국의 MD체계 편입에 소극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사드배치에 한국이 협조적으로 돌아선 것을 큰 변곡점으로 여기는 것이다. 둘째, 사드는 북핵방어가 주목적이 아니라 중국 전역을 샅샅이 들여다보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다. 처음 배치 때는 방향을 북한으로 하고 있어도 필요할 때는 IT 기술로 칩만 꽂으면 중국을 타깃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본다. 셋째, 사드를 서둘러 배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한국 정부 당국자 언질을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는 얘기다. 과거 중국이 오해하도록 한 우리 정부 당국의 언급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외교력을 집중해 국면을 전환시켜야 한다. 필요하다면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특사로 보내서라도 대화를 통해 한·중 마찰을 줄여야 한다. 외교적·경제적 타격이 너무 크다. 한·미동맹을 중국에 이해시키고 오해를 해소해야 한다. 사드를 배치하건 않건 간에 이는 어디까지나 한국의 자위권적인 조치이며 한·미동맹차원의 일이므로.

얼마 전 따끔한 깨우침과 함께 한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KBS 역사저널, 그날’이다. 고려는 강했다. 거란의 거센 말발굽에 맞서 신출귀몰한 전술로, 혹은 대담한 외교로 국난을 이겨냈다. 서희, 강감찬… 기존의 귀에 익은 영웅들은 물론이고, 그 외에도 절개와 지략이 돋보인 명신은 더 있었다. 예컨대 하공진에 대한 재발견이다. 하공진 장군은 개경이 함락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적진에 홀로 뛰어 들어가 목숨을 아끼지 않는 외교로 거란의 철병을 이끌어내고 백성과 조정을 지켜냈다. 지금 한국에 하공진 장군이 필요하다. 지금 미국에서 전술핵재배치와 핵무장론 등 북핵에 대응한 옵션들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때일수록 강온 양면 전략이 필요하다. 그 어떤 피비린내 나는 ‘총칼전쟁’보다도 외교담판으로, 유세사의 세치 혀로 끝내는 ‘외교전쟁’이 유익함은 물론이다. 카리스마와 혜안을 함께 지닌 정치지도자가 나와 북핵, 통일, 경제외교에 두루 뛰어난 해결사 역할을 직접 해주거나, 혹은 프로 외교가에서 ‘한국형 키신저’라도 발굴해주기를 기대하는 절실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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