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농공상’이란 유교에서 사대부·농민·공장(工匠)·상인 등 계급을 나눈 말이다. 줄여서 사민(四民)이라 했으며 글만을 읽었던 사대부가 제일 존중받는 계급이었다. 그 다음이 농민, 공업과 상업은 이들보다 한 아래의 계급이었다.

당시에도 부를 축적한 상인들은 사대부들의 밥으로 통했다. 탐관의 수탈 대상이 돼 죄가 없어도 툭하면 잡혀 들어갔다. 강원도에 ‘최병두 타령’이란 설화가 있다. 한 탐관오리가 강원감사로 부임하여 죄 없는 부자 최병두를 곤장 쳐 죽이고 재산을 약탈했다는 얘기다. 개화기 이 소재를 바탕을 창극이 공연됐는데 최고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연려실기술에 수록된 한 야사를 보면 재미있다. 고을 사또가 부임하여 아전으로부터 관내 면면을 듣게 되었다. 사또가 겨냥한 것은 제일부자였다. 부자를 잡아들여 곤장을 때려야 목적한 것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자는 죄를 지은 것이 없었다. 아전은 부자가 인색하여 부모 제사 때 제물을 잘 갖추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사또는 부자를 즉각 체포, 대령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분노한 사또의 목소리가 동헌을 울렸다. 영문도 모르는 부자는 그저 살려달라고만 하소연한다. 사또의 그 다음 질문이 재미있다. “네가 지금 천은으로 부를 이루었으나 부모제사에 제물을 풍성히 쓰지 않았다고 들었다. 효는 만행의 근본이거늘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부모영전에 제물을 소홀히 할 수 있는가. 저 불효막심한 놈을 매우 쳐라!”

주인이 구속된 상황에서 아내는 아전에게 살려달라고 호소한다. 사또의 공분을 달래려면 엽전을 얼마나 준비해야 하냐고 묻는 것이다. 아전은 자신이 먹을 것을 계산하여 뜯어내고 사또에게 부자를 석방하도록 진언한다.

이런 수탈의 상황에서 서민들에게 양반은 선망의 대상이 됐다.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은 양반 계급의 위선적 삶을 들추어 낸 고발 문학이다. 돈을 주고 양반 직첩을 샀다가 포기한 가짜 양반의 토로가 재미있다. ‘양반은 겉치레일 뿐 구속이 많고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월권(越權)이 도둑과 다를 바 없다. 다시는 양반 노릇 안 하겠다.’

중국을 다녀 온 실학자 초정(楚亭) 박제가도 양반사회의 부조리를 개탄했다. 그는 조선이 가난한 것은 사대부만을 중시하고 상업과 무역이 부진한 탓이라 비판했다. 상공업이 발전해야 나라가 부강하고 재물이 풍성해야 예의와 염치를 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사치로 망한다고 하면, 우리나라는 반드시 검소함으로 인해 쇠퇴할 것이다. …(중략)… 재물은 우물과 같다. 퍼 쓸수록 자꾸 가득차고 이용하지 않으면 말라 버린다. 비단을 입지 않기 때문에 나라 안에 비단 짜는 사람이 없다. 그릇이 비뚤어지는 것을 개의하지 않으므로 교묘함을 일삼지 않아, 나라에 공장과 질그릇 굽는 곳, 대장간이 없어 기예도 사라졌다.”

실학자인 농암(聾庵) 유수원(1694~1755)도 사농공상의 계층 구조를 개혁하자고 주장한 소론계 실학자였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우서(迂書)’에서 강력한 상업 정책 및 상공업 발전 등을 주장했다. 더욱 주목 되는 것은 감히 입 밖에도 내지 못할 ‘사·농·공·상 사민(四民)의 평등함을 주장한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사농공상이란 구시대의 잔영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각종 명목으로 돈을 뜯겨야 하는 재벌들이 대가성이나 정경유착이란 죄목으로 사법처리 도마 위에 오른다. 국회마저 정권 공격의 단골메뉴는 특혜와 뇌물의 고리를 들추는 일이다. 주인공 이름만 틀렸지 제2, 제3의 ‘최병두 타령’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기업을 하고 국가를 위해 희생할 기업인이 있겠는가.

정치도 민주주의도 나라의 미래도 굳건한 경제가 뒷받침 돼야 성공한다. 크고 작든 기업을 하는 이들이 존중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 악덕기업은 처벌받아야 하지만 정권 교체시기마다 되풀이 되는 기업주 사냥은 없어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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