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눈길’ 스틸 (제공: ㈜엣나인필름 CGV아트하우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종분
현재·과거 오가며 진행

실제 소녀들 나잇대 배우들
추운 겨울 동상 위험 속 열연

드라마로 방영돼 신선함 부족
러닝타임 다소 길게 느껴져
김영옥 묵직하게 이끌어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2017년 2월 현재 박차순 할머니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생존자는 국내 거주 38명, 국외 거주 1명뿐이다. 살아있는 역사들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가 나왔다.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소녀들이 걸었던 눈길 이야기가 막을 올렸다. 삼일절에 개봉하는 영화 ‘눈길’은 학교도 다니고 글도 읽을 줄 아는 부잣집 막내딸 ‘영애(김새론 분)’와 그런 영애를 동경하던 가난한 소녀 ‘종분(김향기 분)’이 끔찍한 곳으로 끌려가게 되면서 같은 비극을 겪게 된 이야기를 담았다.

▲ 영화 ‘눈길’ 스틸 (제공: ㈜엣나인필름 CGV아트하우스)

1944년 일제강점기 말. 부잣집에서 태어나 공부까지 잘하는 영애와 가난하지만 씩씩한 종분은 같은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전혀 다른 운명을 타고났다. 종분은 똑똑하고 예쁜 영애를 동경해 ‘엄마(장영남 분)’에게 ‘학교 다니게 해달라’ ‘일본으로 유학 보내달라’ 조르기 일쑤였다.

하지만 엄마는 소식이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이어가느라 정신이 없다. 맛있는 밥을 해주겠노라며 그릇을 내다 팔러 나간 엄마는 동생 ‘종길’을 종분에게 부탁하고 집을 떠난다. 그때 느닷없이 집으로 들이닥친 일본군들 손에 이끌려 종분은 낯선 열차를 타게 된다.

한편 아버지가 독립운동가인 사실이 일본군에게 발각된 영애는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준다는 말만 믿고 열차에 몸을 싣게 된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소녀들이 가득 찬 기차 안에서 영애를 발견한 종분. 둘은 앞으로 펼쳐질 운명을 예상하지 못한다. 소녀들은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영화는 할머니가 된 종분이 1944년의 어린 종분과 영애가 겪은 일을 꿈으로 꾸면서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현재의 종분은 달동네 반지하 월셋집에서 소일거리로 근근이 살아간다. 몸은 노쇠해졌지만, 정신은 아직도 그때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해 악몽을 꾼다.

▲ 영화 ‘눈길’ 스틸 (제공: ㈜엣나인필름 CGV아트하우스)

종분의 옆집에는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된 소녀 ‘은수(조수향 분)’가 수도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살고 있다. 종분은 평탄한 삶을 살지 못한 은수에게 자꾸 눈길이 가지만 사랑을 받아 본 적 없는 은수는 짜증 나기만 한다.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전한다. 그래서 더욱 가슴에 애잔함이 남는다.

앞서 35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귀향’은 성적이고, 폭력적인 묘사로 관객에게 충격을 안겨 준 반면 이 영화는 자극적이고 현실적인 장면을 덜어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단순히 호소하기보다 그들의 아픔을 관객들과 함께 느끼고 위로하고자 했다. 아직 폭력의 아픔을 제대로 사과받지 못한 시점에서 더욱 신중해야 했다는 게 이나정 감독의 설명이다. 그리고 현시대를 힘들고 어렵게 사는 소녀들에게 이야기한다. 손을 내밀면 서로 아픔을 보듬고 살 수 있다고.

작가의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난 대사는 “우리 아버지가 나라를 구했다네. 가족들은 다 지옥으로 보내놓고…”다. 류보라 작가는 “현재도 무관심 속에 놓인 분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가 같이 생각해보면 좋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며 “그렇게 나라를 위해 힘썼던 분들은 여전히 힘들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 왜 이런 나라가 되었을까 라고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밝혔다.

▲ 영화 ‘눈길’ 스틸 (제공: ㈜엣나인필름 CGV아트하우스)

하얀 눈길 위에서 죽고자, 살고자 했던 소녀들의 활약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배우 김향기와 김새론은 추운 날씨에 피 분장이 얼어 손가락이 동상에 걸릴 정도로 위험했음에도 열연했다는 후문이다. 영화에서도 보면 배우들의 손이 추위에 시뻘겋게 얼어 있다. 당시 일본군에게 끌려간 소녀들의 나이가 실제 배우들의 나이어서 더욱 실감 났다.

하지만 이미 공중파 TV에서 드라마로 방영된 바 있어서 신선하거나 이슈로 주목받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예상되는 스토리 전개가 121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힘들게 끌고 간다. 또 “이 친구들 기억해야 돼”라는 ‘영애’의 대사가 무색하게 영화 속 다른 소녀들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아 아쉬웠다.

이 모든 단점을 배우 김영옥이 끌고 간다. 영화를 변사처럼 이끄는 김영옥은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주며 비극적인 역사를 경험했던 ‘종분’으로 분해 작품의 주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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