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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 시론] 태극기는 어제의 그 함성을 듣고 싶어 한다
이상면 편집인  |  lemiana@newscj.com
2017.02.28 17: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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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 태극기의 물결이 대한민국을 하얗게 뒤덮었다.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던 민중의 뜨거운 심장은 고국산천을 붉게 물들였으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이들의 함성은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온갖 불법과 무력으로 한반도를 짓밟았던 일제는 분연히 일어난 사람들의 눈에서 결기를 느꼈을 것이다.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일제는 총과 칼로 대응했다. 평화를 위한 몸짓을 무력으로 무참히 짓이긴 그들은 한반도의 평화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까지 위협했다. 겉으로는 허울 좋게 동양의 평화를 운운했지만 그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처럼 음흉함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조국의 독립을 외쳤던 이들은 만세 현장에서 혹은 옥중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꿈에도 그리던 조국의 독립을 코앞에 두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이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혹여 그 시절에 우리가 살았더라면 우리는 그들처럼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 한 목숨 바칠 수 있었을까. 당연히 조국 독립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진정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고서야 감히 우리가 우리의 행보를 단정할 수 있을까. 올해로 3.1운동이 일어난 지 98년을 맞는다. 100주년을 몇 해 앞두고 있는 지금 ‘나라면 과연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은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과도 맞물리기 때문이다. 98년 전 전국방방곡곡을 뒤덮은 태극기의 물결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뒤덮는 태극기의 물결과 오버랩 되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태극기는 국가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우리 민족의 상징이다. 타국에서 태극기를 보면 가슴 뭉클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태극기의 의미가 그저 한 나라의 국기라는 데 머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외국에 나가 있지 않더라도 올림픽이나 각종 스포츠 대회 등에서 태극기가 다른 국기들보다 위에 올라 펄럭일 때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슴 뭉클해진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태극기가 상징하는 바가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크기 때문이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 그 안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실로 태극기는 애국의 상징이며, 애민의 상징이다. 그런 태극기가 요즘 들어 위기를 맞고 있다. 때 아닌 봉변이라고 해야 하나. 바늘 가는 데 실 간다는 말처럼, 태극기를 보면 가슴 뭉클, 코끝 찡한 울림을 주던 태극기가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으니 이 또한 국가적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자는 취지에서 태극기 달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는 지자체마다 태극기를 바라보는 삐딱한 시선으로 때 아닌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지난달 25일에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류스타거리에서 태극기 퍼레이드와 태극기 달기 캠페인을 벌이던 청담동장이 지나가던 시민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공연과 캠페인에서 태극기를 온몸에 두르거나 양손에 쥐고 흔들면서 대로변을 걷다가 대통령 탄핵 반대 ‘태극기 집회’로 오해를 받은 것이다. 때가 때이니 만큼 태극기를 든 사람만 봐도 오해하는 판국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독립투사·애국지사들의 그 숭고한 뜻을 기리자고 든 태극기에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부끄러울 따름이다. 오죽하면 광주시는 올해 3.1절 기념 부대행사 참가자들에게 태극기를 무료로 나눠주기로 한 계획을 철회했을까. 나라의 상징이자, 민족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태극기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 측 변호인이 헌법재판소에서 태극기를 펼치는 퍼포먼스는 사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그 어떤 메시지도 전달하지 못한 하나의 해프닝일 뿐이다.

태극기는 잘못을 무마하기 위해 쓰는 면죄부도 아니요, 여기저기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라고 있는 동네북이 아니다.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태극기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변형시키는 것은 국기에 대한 모독이며, 피 값으로 이 나라, 이 겨레를 지켜 온 순국선열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태극기에 단 노란리본이나, 태극기에 그려 놓은 촛불 모양 또한 그 누구를 위한 향연도 될 수 없다. 지금 이 나라에 불고 있는 태극기 바람이, 그 옛날 이 강토, 이 강산에 불던 그것과는 다름이 새삼 피부로 느껴진다. “대한독립 만세!”를 목청껏 부르짖던 그들의 손에 들린 태극기가 조국의 광복을 가져온 피 묻은 간절함이었다면, 지금 태극기를 든 이들이 부르는 대한민국은 과연 무엇을 가져오는 외침이며, 누구를 향한 외침인지 묻고 싶다.

태극기는 모든 민중의 손에서 가슴으로, 뜨겁게 타는 목마름으로 함께 들고 흔들 때 그 빛을 발한다. 더 이상 태극기가 어느 누구를 위한 외침이 아닌, 진정으로 인류가 필요한 일에 평화의 도구로 사용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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