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인정돼 수많은 종교가 한 데 어울려 살고 있는 다종교 국가다. 서양이나 중국에서 들어온 외래 종교부터 한반도에서 자생한 종교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각 종단들은 정착하기까지 한반도 곳곳에서 박해와 가난을 이기며 포교를 해왔고, 그 흔적은 곳곳에 남아 종단들의 성지가 됐다. 사실상 한반도는 여러 종교들의 성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에 본지는 ‘이웃 종교 알기’의 일환으로 각 종교의 성지들을 찾아가 탐방기를 연재한다.

 

▲양산 통도사 전경. ⓒ천지일보(뉴스천지)

우리나라 3대 사찰 ‘통도사’

신라시대 고승 자장율사 창건
부처의 사리 모셔진 불보사찰
대웅전에 불상 대신 사리 놓여

경내 불교 보물 ‘봉발탑’ 눈길
탑 상단 석물 ‘미륵불’ 상징해
四方 4가지 얼굴 가진 대웅전

[천지일보=박완희 기자] 사찰은 무엇을 모시고 있는가에 따라 불자들이 자주 찾는 기도처가 되기도 하고, 순례지로서 신성시하는 장소로 신봉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인 통도사(通度寺)는 불(佛), 법(法), 승(僧) 불교의 삼보 가운데,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사찰(佛寶寺刹)이다. 석가(釋迦)의 진신사리 중 일부는 이곳에 있다고 전해진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해 간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열반(涅槃)에 들었다.

고승이나 덕망 높은 사람을 화장한 뒤, 유해에서 나오는 구슬 모양의 결정체를 사리(舍利)라고 한다. 불교계에서는 이를 참된 불도 수행의 결과로 여긴다. 여기서 석가의 것은 진신사리(眞身舍利)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이를 봉안한 사찰들이 있다.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석가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에 속하는 통도사와 상원사(上院寺), 봉정암(鳳頂庵), 정암사(淨巖寺), 법흥사(法興寺) 등이다.

통도사를 창건한 신라 시대 고승인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는 643년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석가의 사리와 정골(頂骨)을 이곳에 나눠 봉했다. 1월 초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는 양산 통도사를 찾았다.

▲남쪽 방향에서 대웅전을 보면 ‘금강계단’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태백산맥에 딸린 영축산(靈鷲山, 고도 1081m)은 가지산(1241m)과 운문산(1188m) 등 7개 영남알프스 산군 중 하나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가지산도립공원 내 속한 이 산은 정상의 바위가 마치 독수리 부리처럼 생겼다고 해 취서산(鷲棲山)으로도 불린다. 남쪽 기슭에는 통도사가 자리한다.

통도사의 이름은 이 산의 모습이 석가가 법화경(천태종 근본 경전)을 설한 곳인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고 해서 붙여졌다.

◆석조물 중 유일한 보물 ‘봉발탑’

사찰의 매표소 역할을 하는 산문을 통과했다. 무풍한송로(無風寒松路, 산문 무풍교에서 경내 청류교까지 약 1㎞의 산책길) 옆으로는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보이고, 소나무 숲의 행렬이 이어진다. 통도사는 한 차례 방문으로 다 둘러보기 힘들 정도의 큰 규모를 갖고 있다. 서·북쪽은 안양암·자장암·극락암·비로암·백운암·취서암 등이, 남쪽에는 보타암·취운암·수도암·서운암·사명암·백련암·옥련암 등이 있다. 절은 평지에 가깝고 동서로 흐르는 냇가를 따라 길게 누운 모양을 하고 있다. 통도사는 크게 상로전(上爐殿)·중로전(中爐殿)·하로전(下爐殿) 등 3개의 영역으로 나뉜다.

‘영취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라고 적힌 일주문(一柱門) 앞에 다다랐다. 편액의 글씨는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의 것으로 전해진다. 문 양쪽으로는 ‘불지종가(佛之宗家)’와 ‘국지대찰(國之大刹)’이라는 주련이 걸렸다.

▲보물 제471호로 지정된 봉발탑. ⓒ천지일보(뉴스천지)

조금 걸었더니 미륵불을 모신 중로전의 용화전(龍華殿) 앞에서 독특해 보이는 탑이 하나 눈에 띈다. 높이 3m가량의 봉발탑(奉鉢塔, 보물 제471호)은 경내 석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다. 돌기둥을 기단 위에 세우고, 그 위에 받침대를 얹은 후 마치 밥그릇 같은 모양의 석물을 올렸다. 뚜껑이 무겁게 느껴지기는 하나 전체적으로는 안정된 균형을 취했다. 일반적인 형태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불경에 따라 세워졌다. 가섭존자(迦葉尊者: 석가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가 인도 계족산에서 미륵불을 위해 석가의 발우(鉢盂: 공양을 받는 그릇)와 가사(袈裟)를 갖고 기다린다는 교리를 담았다. 탑의 조각 양식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봉발탑의 현재 공식 명칭과 ‘봉발대’라는 이름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사리가 아닌 미륵불을 모시고 있기에 성격상 ‘봉발탑’ 보다는 ‘봉발대’ ‘석고발우’ ‘석조봉발’ 등으로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는 주장이다.

◆불상 대신 진신사리… 네 얼굴의 대웅전

통도사의 가람배치(伽藍配置: 사찰의 중심부를 형성하는 건물 배치)는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에 금강계단의 위치를 비롯한 전체적인 가람배치가 매우 특이하다. 중로전을 지나 상로전 영역에 들어서서 처음 마주하는 건물은 목조로 된 대웅전(大雄殿, 국보 제290호)이다. 상로전은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금강계단과 이곳을 참배키 위해 마련된 대웅전, 응진전(應眞殿)·명부전(冥府殿)·삼성각(三聖閣) 등으로 구성됐다.

▲대웅전 내부에는 불상이 없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대웅전 내부에는 여느 법당과 달리 불상이 모셔져 있지 않다. 석가의 진신사리가 이곳에 있으니 그를 빙자한 불상을 따로 둘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을 버틴 대웅전은 암팡진 모습을 뽐냈다. 대웅전의 활주는 사찰을 배려해 처마 끝 4개 귀퉁이와 바닥 간에서 끼여 지붕을 떠받쳤다. 소요태능(逍遙太能, 1562~1649)선사의 손상좌인 우운스님이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45년(인조 23) 중건해 오늘에 이르렀다. 건물 바깥쪽 기단 부분과 돌로 된 층계석 계단 양쪽(소맷돌) 부분만이 창건 당시의 것으로 전해지는데, 통일신라 시대의 양식을 이어받은 연꽃조각을 볼 수 있다.

대웅전의 동서남북 네 면은 각자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동쪽은 대웅전, 서쪽 대방광전, 남쪽 금강계단, 북쪽 적멸보궁 등 저마다 달리 쓰인 현판이 걸렸다.

금강계단은 영원히 깨어지지 않는 금강(금속 중 가장 단단한 돌)과 같이 계율을 지킨다는 뜻을 갖는다.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진신사리가 있는 이곳 금강계단을 통해야만 계(戒: 죄를 금하고 제약하는 것)를 받을 수 있다.

▲한 승려가 대웅전으로 걸어가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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