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천지=송범석 기자] 제목부터 아이러니다. 책은 각각의 가족들이 거짓 행복 뒤에 숨겨 놓은 교묘한 불안감과 처연한 슬픔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모든 것을 달관하면서도 삶에 끝없이 집착하는 모순,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낸 광기가 진하게 풍겨난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저자의 글은 눈부시다. 저자는 각각의 작품마다 독특한 전개 기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감각적인 문체는 블랙홀처럼 온 신경을 빨아들인다. 억압된 현실에 비틀린 인간의 삶에 매서운 시선이 박히면서 독자는 화상과도 같은 상처의 흔적을 느낀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얼핏 고요해 보이지만 부서지기 쉽고, 상처 입은 마음을 안고 사는 다양한 가족들의 초상을 그려낸다.

작가는 에피소드 중 하나인 <불편한 형>을 통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멀어져 가는 한 형제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루이스 알바란은 서슴없이 자기 형에 대해 “기생충 같은 인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경멸의 시선을 보낸다.

12월 24일 밤, 형인 레예스 알바란이 알코올에 절어 불쑥 집에 찾아온다. 루이스는 불편한 형을 쫓아내는 방법이 그에게 따듯한 손님 대접을 해주는 것이라고 결정하고, 참을성 있게 계획을 진행해 나간다.

하지만 둘의 언쟁이 시작되면서 루이스의 참을성이 바닥을 드러낸다. 아우는 형에게 “놀고먹기만 하는 인간”이라고 소리치고 형은 “너는 네 이익을 위해 내 인생을 짓밟아 놓았어. 교활하고 아부만 잘하는 인간”이라며 맞받아친다.

결국 레예스는 뒤틀린 미소만 남기고 소리 없이 떠난다. 루이스는 주정뱅이 형이 마지막에 남긴 말에 크게 흔들린다.

“네 하인들을 제대로 바라보기나 했어? 사실대로 말해 봐. 네가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나? 진실로 네가 가까이 다가간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에피소드들은 작가가 역사의 경험을 녹여 쓴 것들이다. 해박한 지식 속에서 우러나는 절묘한 풍자는 쓰디쓴 교훈을 남긴다.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 웅진문학에디션뿔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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