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재심’ 김태윤 감독 ⓒ천지일보(뉴스천지)

“사건 자체 너무 극적이라 끌려

존인물과 만난 후 제작 결심 
지금도 둘다 형·동생으로 지내” 

“왜곡·누락 없이 담으려 노력
당사자에게 피해 없도록 주의”

명쾌하고 묵묵하게 진심 전해
“소외된 이웃 살필 계기 됐으면”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김태윤 감독이 걸어온 길을 보면 사회를 향해 과감한 메시지를 던져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삼성전자 반도체 산재 피해자의 실화를 다룬 ‘또 하나의 약속(2014)’에선 그의 뚝심이 보인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을 상대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모두가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해냈고, 역사기록물을 남겼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하던 사람도 영화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되고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영화를 만드는 보람이라는 김태윤 감독. 이번엔 일명 ‘약촌오거리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재심’으로 또 한번 묵직한 진심을 세상에 전한다.

영화 ‘재심’은 증거도 없이 자백만으로 목격자가 살인범으로 뒤바뀐 사건을 소재로, 벼랑 끝에 몰린 변호사 ‘준영(정우 분)’과 살인 누명을 쓰고 10년이라는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현우(강하늘 분)’가 다시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재진행형 휴먼드라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을 토대로 영화를 제작하기는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 영화 ‘재심’ 스틸. (제공: 오퍼스픽쳐스)

김 감독이 ‘약촌오거리 사건’을 영화화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두 가지다. 그는 “하나는 사건 자체가 너무 극적이어서 마음에 끌렸다. 책상에 않아서 쓴 시나리오랑은 차원이 다른 설정”이라며 “10년을 복역하고 나왔다는 부분까진 책상에서 쓸 수 있다. 하지만 누명 쓴 사람한테 근로복지공단에서 보상금을 청구해서 1억이 넘는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건 기막힌 사연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것 때문에 변호사를 만나게 됐다. 안 그랬으면 평생 누명 쓴 채로 살아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 이유는 실존 인물과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김 감독은 “박준영 변호사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 떠보려고 했던 속물변호사였다’라는 말이 좋더라”며 “정의로운 변호사라니 말했으면 안 했을 텐데 거기에 꽂힌 것 같다”고 귀띔했다.

▲ 영화 ‘재심’ 스틸. (제공: 오퍼스픽쳐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박준영 변호사는 변호사 같지 않은 변호사였다. 첫 만남에서 트레이닝복에 러닝셔츠를 입고 편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정도로 털털했다. 반면 실제 만난 최군은 거친 느낌이 강했다.

“어찌 됐든 10년 동안 감옥에 있다가 나온 분이니까 솔직히 속으로 ‘진짜 살인범이면 어떻게 하지’라고 무서운 마음이 있었죠. 그런데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생각해보니 ‘나 같은 편견 때문에 저 사람이 힘들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0년 동안 살고 나와서 가장 힘든 게 사람들의 편견이 아니었을까요. 그 부분이 영화화된 가장 큰 주축이기도 해요.”

영화 개봉 후 최군은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박 변호사는 시사회에 초대돼 봤다고 김 감독은 전했다. 박 변호사는 본인 이름이불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등 정신이 없었다는 후문.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영화적 허용 범위 안에서 재구성된 것일까.

김 감독은 “딱 잘라서 여긴 팩트가 아니라고 하기 모호한 부분이 있다. 굳이 말씀드리자면 변호사의 시작은 속물 변호사가 맞다. (박준영 변호사) 본인 얘기로는 변호사자격증 가지고 로펌, 삼성 등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다고 했다”며 “작품에서 정우씨가 고등학교 때까지 사고치고 군 제대 후 고시촌 가서 공부했는데 붙었다는 게 사실이다. 최군은 아무래도 사생활을 보호해줘야 해서 현재 삶과 어머니와의 관계는 각색이많이 됐다”고 밝혔다.

김태윤 감독은 영화 제작에 앞서 세 가지원칙을 정했다. 그 원칙은 ▲실존 인물들과의 인간적 유대를 중요시할 것 ▲최대한 디테일하게 캐릭터와 사건의 경위 파악할 것▲영화의 결과물이 실존 인물들에게 피해가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것 등이다. 이 원칙은 제작 단계부터 마케팅 기간까지 모든 스텝이 지켜야 했다.

▲ 영화 ‘재심’ 스틸. (제공: 오퍼스픽쳐스)

김 감독은 “사건 자체를 다뤘기 때문에 그것이 왜곡되거나 미화되거나 빠지거나 하는 것이 없이 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영화가 만들어진 다음 혹시라도 그분들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이 있거나, 이미지에 타격에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인간적인 유대를 가진다는 것은 친하게 지낼 때 오히려 속내를 많이 털어놓더라. 그래서 지금은 둘 다 형, 동생처럼 지낸다. 그래야 저도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작품에 관한 그의 진심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는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소재든 간에 재밌게 보시는 게 가장 중요하죠. 그다음에 ‘약촌오거리 사건’에 대해검색 한번 해보시고 이 계기로 감명 깊게 보셨다면 사회적으로 소외된 분들을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그럼 의미 있는 영화가 될 것 같아요.”

앞으로 ‘라라랜드’ 같은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김태윤 감독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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