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하카나’ 스틸 (제공: 극단 시월)

일본 도깨비 설화 바탕으로
노름꾼의 욕심·사랑·종말 그려

일본적인 대사·전개 다소 흠칫
배우들 열연으로 몰입도 높여
일본식 의상·분장도 볼거리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쓸쓸하고 찬란한 한국 도깨비가 가고 일본 도깨비가 왔다. 연극 ‘하카나(HAKANA)’가 2011년 한국 초연 후 6년 만에 다시 막을 올렸다.

연극 ‘하카나’는 노름의 여신에게 총애를 받던 노름꾼 ‘스즈지로(김장동 분)’가 도깨비에게 돈 대신 절세미인 ‘하카나(서혜림 분)’를 얻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배를 타는 나루터에서 저승을 가는 이를 붙잡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청귀(김병철 분)’의 해설로 극이 시작된다. 도박 중독자인 ‘스즈지로’는 노름의 여신에게 총애를 받아 백전백승으로 돈을 땄다. 노름을 시작하면 노름의 여신은 ‘스즈지로’에게 방울소리를 들려줘 어떤 패가 승패인지를 알려준다. 스즈지로의 성질이 얼마나 고약한지 돈이 없으면 눈이라도 빼서 달라고 할 정도였다.

일대에 쓰레기 도박꾼이라고 알려진 ‘스즈지로’의 소문을 들은 도깨비 ‘적귀(진영선 분)’가 돈 대신 여자를 걸고 놀음을 시작한다. 노름의 여신은 역시 ‘스즈지로’의 손을 들어줬고, ‘적귀’는 아름다운 시체를 찢어 만든 절세미인 몸에 아기의 정신을 담은 ‘하카나’를 선물한다. ‘하카나’가 완전한 인간이 되기까지는 꼬박 100일이 걸린다.

‘스즈지로’는 스님 ‘묘해(김영찬 분)’에게 돈을 주며 ‘하카나’를 인간답게 만들어 달라고 한다. 하지만 노름의 여신도 여자였다. ‘하카나’에게 쩔쩔 매는 ‘스즈지로’ 모습에 화가 난 노름의 여신은 더 이상 ‘스즈지로’에게 방울 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  ⓒ천지일보(뉴스천지)

노름 끗발이 떨어진 ‘스스지로’는 더는 백전백승 도박꾼이 아니다. 원수도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자신이 눈을 빼앗은 ‘조로마사(서동석 분)’와 맞붙게 된 ‘스즈지로’는 모든 돈을 빼앗기고 급기야 ‘하카나’까지 노름판에 올려버리고 만다. 극단 시월에서 2010년 초연을 올린 ‘하카나’는 일본의 도깨비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일본작가 요코우치 켄스케의 작품으로, 지난 2008년 일본의 대극장 메이지좌에서 처음 공연된 바 있다.

당시 일본 아이돌 모닝구 무스메의후지모토 미키가 ‘하카나’ 역으로 열연을 펼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초연 당시 일본만화의 전설 ‘아다치 미츠루’의 전문 번안 작가 김문광씨의 손을 거쳐 공연 자체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무대 미학에 재치 넘치는 대사들과 전개가 더해졌다.

‘덧없는 인간의 꿈’이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여주인공의 이름 ‘하카나’처럼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하는 신약성경의 성구와 맞아 떨어진다. 끝없는 욕심을 부린 ‘스즈지로’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한 번만”이라고 외치다가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인지 깨닫는다.

내용은 지극히 일본적이다. 망나니 같은 한 남자, 그에게 목매는 여자, 여장 남자를 사랑하는 스님 등 한국 정서와 맞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내용을 모르고 예매한 관객이라면 흠칫 놀랄 수도 있다.

반면 일본 연극의 맛을 느끼고 싶은 관객이라면 새로운 도전일 수 있다. 특히 배우들의 열연이 인상적이다. 김장동은 시종일관 세상에 불만을 품은 쓰레기 ‘스즈지로’ 역로 분해 관객들의 답답함을 자아낸다.

‘하카나’ 역을 맡은 서혜림은 오그라들 수 있는 갓난아이 시절을 무난히 소화했다. ‘하카나’의 성장에 따라 대사 톤이 바뀌어 몰입감을 선사한다.

▲ 연극 ‘하카나’ 스틸 (제공: 극단 시월)

무대는 일본식 2층 가옥과 좌우에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앞마당으로 꾸며졌다. 원산지가 일본인 연극답게 일본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 들어 신선했다. 일본식 가옥 1층은 매춘부들의 직장으로 쓰인다. 한지를 바른 격자무늬 여닫이문에 조명을 비추는 등 여러모로 활용된다.

일본의 정서가 담긴 작품을 한국에서 구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극단시월의 연출진은 “공연의 배경이 현대극이 아닌 일본의 옛 배경이다 보니 이 부분을 표현하는 데 있어 굉장히 많이 고심했다”며 “주 무대인 일본의 옛 노름판이나 술집 등의 공간적 배경을 표현하기 위해 무대는 물론이고 조명이나 음향 효과 등 연출적인 부분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무대만큼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배우들의 의상과 분장이다. 남자 배우들은 윗머리를 남기고 주변머리를 밀어버리는 일본전통 머리스타일로 밀고, 에도시대의 의상으로 중무장했다. 또 갓난아기에서 성숙한 여인이 돼가는 ‘하카나’는 순백의 의상에서 점차 화려한 붉은 의상으로 꽃 한송이가 붉게 물드는 과정을 표현했다.

‘하카나’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꿈꾸게 된 ‘스즈지로’의 사랑을 그린 연극 ‘하카나’는 오는 3월 5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 3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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