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사옥 로비.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한진해운이 법원의 파산 선고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1977년 설립돼 세계 7위 선사까지 성장했던 한진해운이 40년 만에 회사 간판을 내린 것이다. 이로써 ‘한진(HANJIN)’이라는 로고를 달고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던 한진해운 선박도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파산부(재판장 정준영 파산수석부장판사)는 17일 한진해운에 대해 파산을 선고했다.

법원은 지난 2일 한진해운 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했으며 2주의 항고기간 동안 적법한 항고가 없자 이날 파산선고를 내렸다. 법원이 파산을 선고하고 파산관재인을 선임하면 청산 절차가 시작된다. 앞으로 자산 매각과 채권자 배분 등 관련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한진해운 파산 채권의 신고기간은 오는 5월 1일까지이며 제1회 채권자집회, 채권조사 기일은 6월 1일 오후 2시 서울법원종합청사 3별관 1호 법정에서 실시된다.

한진해운의 남은 자산과 인력은 대부분 현대상선과 삼라마이더스(SM)상선이 나눠 인수했다. 한진해운 최대 영업망인 미주·아시아 노선은 SM상선이 인수해 다음 달 영업을 시작한다.

한진해운의 가압류 재산은 처분돼 채권자들에게 배당된다.

한진해운은 1977년 조중훈 창업주가 국내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선사로 설립했다. 출범 이듬해인 1978년 중동항로를 시작으로 1979년 북미서안 항로, 1983년 북미동안 항로 등을 연이어 개척하며 한국 해운업계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갔다.

1988년에는 대한상선(대한선주)과 합병하며 ‘국내 1호 선사’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1992년에는 국내 최초로 4000TEU(1TEU는 6m 길이 컨테이너 1개)급 컨선을 띄우는 동시 국적 선사 최초로 연 매출 1조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1995년 거양해운, 1997년 독일 세나토라인 등을 인수하며 유럽·중국으로 영역을 넓혔다. 1996년에는 국내 최초로 5300TEU(1TEU는6m 길이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을 취항했다.

2003년에는 중국 코스코, 대만 양밍, 일본 K-Line과 해운동명을 결성해 글로벌 컨테이너선사로 안착했다

조중훈 회장이 2002년 11월 타계하자 셋째 아들인 조수호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섰고 해운업이 호황이던 2000년대 중반까지도 5천750TEU급의 컨테이너선을 잇달아 인수하며 순항했다.

그러나 조수호 회장이 2006년 지병으로 별세하고 이듬해 부인인 최은영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선 뒤로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조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 전 회장이 직접 경영에 나섰지만 글로벌 해운 장기침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고 회사는 수천억원대 적자를 내기 시작했다. 결국 한진해운 경영권은 2013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넘어갔다.

조양호 회장은 한진해운의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약 1조 2500억원을 투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운업 불황이 장기화되고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조양호 회장마저 자율협약 신청과 함께 한진해운 경영권을 포기했다.

이후 한진해운은 지난해 9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데 이어, 지난 3일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결국 보름 만에 국내 대표 해운사인 한진해운은 40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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